해외출장 자비로 가지만 '더치페이'는 시들

<김영란법 100일 달라진 풍경>
골프 등 접대문화 개선됐지만
기자들 비용증빙 가욋일 늘어
공익재단 해외연수도 미결론

  • 페이스북
  • 트위치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정부부처의 첫 공식 해외출장인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2016년 10월·미국 워싱턴 개최). 이 행사엔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석했고, 행사 기간 중 동행 취재한 기자단을 위한 만찬자리가 열렸다. 하지만 이날 만찬 식사비용은 기획재정부나 한국은행이 아닌 더치페이로 해결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이달 5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열지 못한 송년회를 대신해 출입 기자들과 가진 신년회 만찬이 세종시에 위치한 ㅎ식당에서 열렸다. 이날 식사 값은 기재부가 냈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9월28일) 직후 법 해석의 모호성 탓에 몸 사리던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 직후엔 공무원 등 취재원을 만날 경우 직무 연관성 여부를 떠나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약속을 꺼리거나 식사 자리가 잡혀도 식대를 각자 냈다.


▲지난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관련,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국정농단 이슈가 불거지면서 퇴색됐다는 일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난 5일 법 시행 100일을 맞은 청탁금지법은 기자사회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골프 등 접대문화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게 기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반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규정한 청탁금지법 가액기준 중 식사비 상한선의 경우 법 시행 초기 더치페이 등을 했던 것에 비해 느슨해진 측면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한 경제지 기자는 “법 시행 직후엔 공무원도 몸을 사리면서 약속 잡는 것조차 꺼렸는데 이젠 과거 수준으로 돌아왔다”면서 “다만 과거처럼 고가의 한우집이나 횟집을 약속 장소로 잡는 것은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업 홍보성 해외출장의 경우 자제하거나 자사 비용으로 가는 것도 부정청탁법이 가져온 새로운 변화상이다. 실제로 지난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가전 전시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의 경우 과거엔 행사에 참여하는 국내 대기업이 현지 숙식 등을 제공했던 것과 달리 개별 언론사가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구입했다.


하지만 CES에 참여한 국내 대기업들이 주요 매체에 대해선 참가비용 이상의 광고·협찬 등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협찬 등에 대한 비용을 증빙하기 위한 ‘권원(어떤 법률행위 또는 사실행위를 법률적으로 정당하게 하는 근거)’을 요구하면서 기자들의 가욋일 역시 늘어났다.


한 신문사 국장급 간부는 “협찬기사의 경우 회사 로그 등을 달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 타 언론사도 달라고 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다른 방법으로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기업 IR페이지”라며 “이럴 경우 기사 형태를 띠기 때문에 기자들의 가욋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기자 장기연수 등을 둘러싼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지난 연말 활동을 끝낸 김영란법 관련 ‘관계부처 합동TF’는 기업 공익재단에서 보내는 기자들의 해외연수부문을 미결과제로 남겨뒀다.


한 종합지 경영기획실장은 “청탁금지법 가액기준과 관련된 시행령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 재단에서 시행하는 해외연수 역시 풀리지 않을까 기대한다”면서 “예전과 같은 규모로 사내 선발자 4명을 뽑았다”고 말했다.


이에 또 다른 언론사 노조 관계자는 “3월까지 시행령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돌다보니 회사 측에 자체 연수방안을 촉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3월까지 지켜보다가 유권해석이 기존대로 유지될 경우 회사 측에 다시 얘기를 꺼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김창남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