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들의 용기…두려움 딛고 목소리 내다

MBC, 반성문 영상 유튜브 공개
뉴시스, 사내 폭행사태 침묵 비판
"징계 감수한 행동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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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기자들이 목소리를 냈다. 선배를 대신해 보도참사에 대한 반성문을 썼고, 폭행으로 얼룩진 사내 부조리에 성명으로 맞섰다. 두려움을 딛고 전한 이들의 목소리는 기자사회를 흔들고 있다. 지난 4일 MBC 내부는 3분40초짜리 짧은 영상에 들썩였다. 이날 ‘MBC 막내 기자의 반성문’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됐다. MBC 공채 막내인 곽동건·이덕영·전예지 기자가 만든 영상이다.


영상은 지난해 11월 광화문 촛불집회 취재 당시 MBC 중계차가 내몰리고 시민들의 비난을 받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현장에 있던 곽 기자는 “취재 현장에서 ‘짖어봐’라고 하는 분들도, ‘부끄럽지 않냐’고 호통을 치는 분들도 있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태블릿PC가 최순실씨의 것이 맞는 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한 자사의 보도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추측으로 기사화하는 현실에 젊은 기자들은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막내 기자들이 언론계 병폐를 고발하며 목소리를 내놨다. 2013년 입사한 MBC 기자들은 지난 4일 유튜브에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이라는 제목으로 내부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왜 진작 나서서 이 사태를 막지 못했느냐고, 그 안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이제 와서 이러냐고 혼내고 욕해도 좋다. 다만 MBC가 다시 정상화될 수 있도록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 달라. MBC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달라. 이 안에서 저희 젊은 기자들이 더 단호하게 맞설 수 있도록 한 번만 더 힘을 보태 달라. 저희가 앞장서겠다”고 호소했다.


전날 뉴시스에서도 막내 기자들의 성명이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사내 폭행사태에 침묵하는 편집국장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연은 이랬다. 뉴시스 정치부 정당팀 A차장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15기인 후배 B기자를 폭행했다. 정강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등을 때리는 등 상당한 폭행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표를 낸 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 기자였다. 막내 기자들의 비판 성명이 들끓은 이유다. 올해로 3년차가 된 12명의 뉴시스 막내 기자는 “후배가 선배에게 폭행을 당해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일어났다”며 “청운의 꿈을 안고 기자를 시작한 이에게 1년 3개월 만에 돌아온 것은 폭력과 인격모독으로 인한 퇴사였다”고 비판했다.


▲2015년 입사한 뉴시스 기자들이 내부 폭행에 침묵하는 편집국장을 상대로 낸 항의 성명.

또 “욕설을 내뱉고 A기자에게 예정에 없던 내근을 지시했다”며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심각한 폭행과 인격모독을 당한 당사자가 느꼈을 모욕감과 수치심, 신체적 고통은 가히 짐작할만하다”고 일갈했다.


선배들도 막내 기자들의 외침에 힘을 보탰다. 가해기자의 동기들(4기)을 비롯해 9기·11기·12기 기자들은 사건 규명을 요구하는 연대성명을 발표했다. 사건은 결국 A차장의 사표와 피해기자 복귀로 일단락됐다.


“선배들도 모르게 자발적으로 만든 영상이었어요.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겠어요. 징계를 감수하고 한 행동에 선배들도 고마움과 부끄러움이 몰려들더군요.”(MBC 기자)


“선배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했어요. 그래도 막내들이 용기를 낸 덕분에 인사위원회가 빨리 열렸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론이 나게 돼서 다행입니다.”(뉴시스 기자)


언론계에서 말단 기자가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놓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곪아터질게 터졌다는 지적이다. 권력 비판 보도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폭력과 욕설로 얼룩진 군대 문화는 그간 언론계에 만연해있는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다.


한 일간지의 기자는 “막내 기자들의 행동을 일시적인 사건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계 전체가 보도와 문화 개선에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송사 기자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후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때는 더 심했다’는 간부들의 꼰대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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