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8월,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전후로 김 전 수석의 어머니와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오랜 설득이 있었습니다. 최순실이 구속된 직후였습니다.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청와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김 수석께서 남긴 글이 있을 겁니다.”
11월, 어머니는 공책 2권을 건네셨습니다. 비망록이었습니다. 고인 일정이나 생각을 쓴 메모는 쓰지 않을 것, 김기춘 전 실장과 청와대의 행적 그리고 진실을 알리는 데 쓸 것을 약속하고 비망록을 품에 안았습니다.
대부분 ‘장(長)’으로 표시된 비서실장 지시사항이었습니다. 유신헌법 지도, 언론 통제, ‘세월호 7시간’과 정윤회 문건에 대한 대응, 사법부 관여, 야당 의원 고발 조치, 국정원을 동원한 ‘우병우팀’까지…‘어긋난’ 지시가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의미가 분명한 것만 찾아 보도하고자 했습니다. 청와대가 지시한 명확한 부분만 써야 차후 ‘책임질 사람’이 재판에 가게 될 때, 비망록이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언론이 지켜야 할 윤리였고, 어머니와 고인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이후 김 전 실장이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됐습니다. 김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비망록은 내 지시가 아니다”라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특검은 비망록을 증거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뉴스를 보며 “그 사람이 좀 더 버텼다면 진실이 밝혀지는 걸 봤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 사람들, 여전히 지금은 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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