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

KBS 양대노조 총파업...출정식 및 새누리당 당사 앞 집회

  • 페이스북
  • 트위치

“굴종의 사슬을 끊고 KBS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자.”
“언론부역자 청산하고 공정언론 쟁취하자.”
“언론장악 방지법 즉각 제정하라.”

대설(大雪)을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공사 본관 앞으로 KBS구성원들이 뛰쳐나왔다. 여느 때 같으면 한창 방송을 위해 뛰고 있을 시간, KBS노동조합과 언론노조 KBS본부 등 양대 노조 조합원 1500여명은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냉기가 올라오는 바닥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같이 외쳤다.

‘국민의 방송’ KBS를 정권이 아닌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는 것이 이들이 세월호 참사 직후였던 지난 2014년 6월 이래 2년6개월만에 다시 총파업에 나선 이유다. 이날 출정식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참사 후 본격화된 KBS에 대한 국민적 지탄 속에서 그동안의 ‘부끄러움’과 ‘송구스러움’을 만회하고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의지를 굳게 다잡는 자리였다.


▲KBS 양대 노조가 8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KBS양대 노조 위원장들은 현 정국과 지금의 KBS를 만들어낸 박근혜 대통령과 고대영 사장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출정식의 취지를 분명히 했다. 또 그간 공영방송 KBS의 구성원으로서 ‘보도참사’를 막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했다.

이현진 KBS노동조합 위원장은 “2012년 우리는 MB특보 김인규 (전 사장) 퇴진 투쟁을 벌였다. 김인규가 KBS를 떠났지만 여전히 제2, 제3의 김인규가 계속 사장으로 내려오고 있다. 고대영 사장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그는 “지난 2013년 두 차례 파업을 통해서 방송법을 일부 바꾸는 성과를 냈다. ‘KBS사장이 될 사람은 대통령 참모여서는 안 된다. 특정 정당 소속이어선 안된다. KBS사장은 청문회를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김인규 방지법이었다”라며 “하지만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고질적인 모순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공영방송 KBS사장을 임명하는 이 지긋지긋한 구태를 벗어나지 않으면 KBS는 단 한 발도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국민들의 염원에, 광화문 촛불에 화답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당당히 앞서나가 싸워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현 정국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 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 뉴스’를 통해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떠올랐다면서 “영화에서 송강호가 머리를 만진 사람은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였다. (영화에서) 설사병이 창궐하자 간첩이, 빨갱이가 퍼트렸다는 황당한 정치공작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재임한) 지난 4년은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하던, 공안탄압·종북몰이 하던 그 시절과 다를 게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그동안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부끄럽고 참담하고 더 나아가 미칠 지경”이라며 “반드시 KBS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리자”고 힘주어 말했다.

성재호 KBS본부장 역시 보도참사를 야기한 주체로 고대영 사장을 거론하며 “KBS안의 부역자, 박근혜 체제를 완전히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 본부장은 “고대영 사장은 보도본부장 시절 양대 노조가 투표를 통해 불신임시켜 쫓아낸 인물”이라며 “청와대가, 박근혜가 다시 KBS를 장악하기 위해서 이사회를 통해 새롭게 내려보낸 인물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성 본부장은 최근 폭로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언급, “길환영 전 사장이 쫓겨난 이후 청와대가 자기 수중에서 멀어져 간 KBS를 어떻게 장악하려고 했는지 낱낱이 구체적으로 적여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믿었던 후보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새 사장(조대현)이 선출되자 (조 후보자를 찍은) KBS 여권 이사들을 ‘면종복배’라며 이사장을 방송통신위원회로 불러 사표를 받아내고 현 이사장인 이인호 씨를 세우고, 이후 이인호 체제가 세운 사장이 고대영”이라는 게 성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고대영 사장이 지난 1년 간 한 게 뭐가 있느냐. 경영상태 빵점, 제멋대로 인사, 급기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참사를 일으키지 않았나”라고 비판하며 “2년 전 세월호 유가족들이 만들어 주신 기회를, 우리가 못다한 숙제를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굴종의 사슬을 끊고 KBS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자”고 강조했다.


▲KBS 양대 노조가 8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이영섭 KBS기자협회장은 MB정부 당시 박재완 대통령 비서실 국정기획수석이 “KBS사장은 새정부의 국정철학 기조를 구현하는 데 동참해야한다”고 발언한 것을 꼬집으며 “청와대 수석이 그런 얘길한 게 암담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후 우리가 국민들한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굴종의 역사를 기록해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협회장은 “광화문에 200만이 넘는 분들이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파수꾼 감시자 역할을 하지 못해서 오랜 기간 국정농단이 벌어진 결과가 막다른 골목까지 왔다. 여기 동참해야 하고 공영방송 굴종의 역사를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파업 출정식을 마친 KBS 구성원들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의 국회 처리를 막고 있는 여당에 항의하기 위해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로 도보로 이동했다. 정부여당, 청와대를 필두로 하는 권력의 공영방송 인사·보도 개입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공영방송 지배구조’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이 필수적인데 현재 여당의 반대로 해당 법안의 통과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이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에서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참 등 일방적 거부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의 법안심사소위 회부가 또 다시 파행을 맞았다. 이에 미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의 골자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데도 여권은 단 한 번도 이를 위한 구체적인 의견을 낸 적조차 없다”며 “대체토론까지 마쳤지만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거부로 법안소위 회부조차 못하고 좌초위기에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 소속인 신상진 미방위원장은 여야 간사 간 하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법안 회부를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기국회가 9일 종료되는 만큼, 임시회가 열려 처리되지 않는다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의 연내 처리는 불투명하다. 해당 법안은 정부여당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KBS이사회,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EBS이사회 등의 이사수 조정과 사장 선임방식 변화 등을 골자로, 권력의 공영방송 통제 및 개입을 제한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KBS 양대노조 총파업 출정식’을 마친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과 합류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언론장악 분쇄!’ 언론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새누리당 당사로 자리를 옮긴 KBS 구성원들은 언론노조 MBC본부, 국민일보 지부, 지역에서 올라와 집회에 참여한 기자들과 합류해 현 시국에 대한 정부여당의 책임을 묻고, 미방위 위원장과 여당 간사를 각각 맡고 있는 신상진·박대출 의원을 성토하고 나섰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신상진 위원장은 학생운동 하다가 감옥에도 가고 좋은 일도 많이 한 분이라고 한다. 그 초심이 변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자꾸 의심이 간다. 왜 말로는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왜 상정을 안하나. 왜 박대출 새누리당 간사 핑계를 대나”라고 비판했다. 또 “박대출 의원은 새누리당 의총에서 ‘세월호 선장이 될것이냐, 타이타닉호의 음악대가 될 것이냐’라고 하면서 ‘타이타닉호에서 연주하다가 함께 침몰하겠다’고 했다는데 그러지 말길 바란다”며 “진정 국민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떼쓸게 아니다. 공영언론 지배구조를 개선해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건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건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에게 주어진 목표는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는 것. 또 무너져버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다시 건설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6주 전에 2만이었던 촛불이 백 배가 넘는 200만으로 불어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첫걸음이 언론을 일으켜 세우는 거다. 그래서 여기 언론노동자들이 모였다. 언론노동자들 모두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는 최전선에서 힘차게 싸우자”고 덧붙였다.

이날 연대 발언을 위해 지상파 MBC, SBS노조 위원장들도 동참해 KBS에 대한 지지와 시국에 대한 견해, 각 사가 맞이한 사정에 대해 설명하며 관심을 촉구했다.


▲KBS 양대노조 총파업 출정식’을 마친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과 합류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언론장악 분쇄!’ 언론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새누리당은 정당이 아니라 조직범죄단체”라고 평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 본부장은 “멀게는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에 닿아있고 가깝게는 두 차례 쿠데타로 헌정질서를 말아먹은 부당한 세력과 맞닿아있다. 1980년 광주에서 총칼과 탱크로 국민들을 학살하고 박종철을 물고문으로 죽이고 이한열을 최루탄 쏴 죽이고 강경대를 쇠파이프로 때려죽인 정당이 새누리당의 뿌리”라며 “이런 정당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있나”라고 되물었다.

윤 본부장은 “새누리당 세력들이 국민의 목숨을 앗아가는 범죄인이 나라살림을 망치는 데 제일 먼저 한 것은 언론을 죽인 일”이라며 “이자리에 계신 동아투위 선배들, 해직기자 선배들도 똑같은 뿌리를 가진 세력에게 일자리를 잃고 내몰렸는데 옷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고 ‘새로 나타납네’하면서 언론노동자를 내몰고 똥개들 앉혀서 도둑들 망을 봐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장악 방지법을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국민의 충견이 돼서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자유와 정의, 인권이 바로 선 나라가 되도록 언론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싸워야 한다. SBS본부가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조능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지난 4월 4일부터 250일째 MBC본부 역시 파업 중이라고 밝히며 “여러분들의 투쟁을 MBC 17개 지부, 1만7000명 조합원들이 받치고 있다.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면서 “우리 힘이 필요할 때 MBC노동조합은 그 투쟁의 대열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지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조 본부장은 MBC본부 기자들의 2년 간 끝없는 투쟁에도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한 데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저희 조합원들은 밤잠을 잘 못 잔다. 저들(MBC경영진 등)이 망쳐놓은 방송환경, 저들이 망쳐놓은 이 나라 언론인, 방송인 중심에 MBC가 있는 거 아닌가 야단을 많이 맞는다”면서 “근데 어렵게 말씀드린다. 여기 지금 모인 조합원, 언론 노동자 동지 중에 부역자가 없다. 다만 그 범죄현장에서 공범들과 함께 있었다. 그 범죄를 막지 못하고 더러운 짓을 막지 못했다. 송구스러우면서도 화가 난다”고 밝혔다.

조 본부장은 “MBC의 상황은 알고 보면 박근혜와 똑같다. MBC뉴스 시청률이 3~4%나오는데 박근혜와 비슷하다”면서 “MBC가 이랗게 돼도 안광한, 김장겸, 최기화는 꼼짝도 안한다. 나라가, 공영방송이 이렇게 돼도 자리만 지키려는 자들이 방송의 적이고 언론 부역자다. 반드시 척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KBS 양대노조 총파업 출정식’을 마친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과 합류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언론장악 분쇄!’ 언론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이날 언론부역자 등에 대해 포승줄로 묶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모습.


촛불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최영준 박근혜정권 퇴진행동 상황실장은 이날 새누리당 당사 앞 현장을 찾아 지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최 실장은 이정현-김시곤 녹취록 공개를 언급하며 “청와대 방송이 언론 노동자들 책임이 아니라 KBS사장과 간부들의 책임임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공정방송이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청와대 방송을 거부하겠다고 나선 언론노동자들이 국민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 모인 언론 노동자들은 이날 새누리당 당사에 끈끈이를 던지고, ‘언론 부역자’로 평가받아온 인사들 가면을 준비해 이들에게 포승줄을 묶는 퍼포먼스 등도 진행했다.

KBS 양대 노조가 총파업을 통해 요구하는 사안은 공영방송 위상추락에 따른 사장의 대국민 사과와 보도 및 방송책임자 문책,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진상규명 및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 쟁취, 일방적 임금삭감 등 독선경영 철회 등이다.

KBS본부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표결을 앞두고 이날 저녁 7시 국회 앞에서 열리는 촛불시위에도 참여했다. 양대 노조는 9일 오전 11시 소속 조합별로 파업집회를 갖고 오후 1시30분 국회 앞에서 탄핵 가결 촉구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KBS 양대노조 총파업 출정식’을 마친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과 합류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언론장악 분쇄!’ 언론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새누리당 당사에 끈끈이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모습.


한편 KBS본부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송출기본근무자 등을 제외한 전국 KBS구성원 3782명이 양대노조 총파업 투쟁지침에 따라 순차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파업 돌입에 따라 TV뉴스와 라디오 등 주요 생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앵커나 진행자가 방송을 중단해 차질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탄핵 관련 사안을 전할 정치부 기자나 디지털 담당 기자들에 대해선 파업열외를 허락했다. KBS 한 기자는 “현재 팀장급 이상은 업무에 참여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방송이 안되거나 하는 일까진 발생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정국 변화에 따라 이들까지 파업에 참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면서 “국정이 공백 상태다보니 파업참여를 제지하려는 간부들의 액션도 크게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