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지대추구 공화국'의 총체적 재앙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최순실이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53개 기업이 774억원을 출연한 사실이 터져 나오자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이 보인 반응이었다. 최씨의 국정농단은 충격적이지만 기업이 내는 준조세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는 얘기다. 정권별로 주체와 명목, 용처만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군사정권 때는 ‘통치자금’이란 명목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9000억원대와 5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후 ‘재단 설립’, ‘국책 사업’ 등으로 이름만 바뀌었다. 노무현 후보 캠프도 112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동반성장기금과 미소금융재단에 2조원에 가까운 기업 자금이 출연됐다. 기업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부담하는 준조세가 한 해 2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재계에는 할당이 떨어지면 기업별 분담액을 정하는 공식까지 정립돼 있다는 후문이다.


기업들의 정치적 자금 출연은 기본적으로 ‘지대추구 행위(rent-seeking activity)’로 볼 수 있다. 지대추구란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대추구 행위의 결과로 얻는 것은 초과 이윤이나 이권, 특혜 등이다.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독대하기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해당 기업들의 민원을 받았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이런 맥락에서 대기업들의 출연은 합리적 계산과 경제적 이해의 산물이다. 대기업들을 피해자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정권이 제공하는 기회를 포착해 초월적인 수준의 지대추구 행위를 벌이면서 특혜를 받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통상 정권은 지대의 배분자이고, 대기업은 지대의 추구자다. 한국에는 권력이 지대를 형성, 배분해 기업이 초과 이윤을 얻고 그 대가로 정치자금 등을 제공하는 ‘지대추구 연합(rent-seeking coalition)’이 형성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행위의 진짜 피해자는 공정한 경쟁 기회를 잃은 중소기업과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소비자, 즉 국민들이다. 근로의욕 저하와 혁신 동력 상실, 사회적 윤리 규범이나 도덕성의 마비 등 지대추구 연합이 초래하는 ‘외부불경제’는 단순한 파레토 최적의 왜곡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한국의 정치·사회·경제·교육 등 전방위에 내재됐지만 은폐해 있던 권력 비리의 민낯이 드러났다. 권력의 최정점에 위치한 정권과 관료, 검찰, 대기업 등으로 구성된 카르텔, 소위 ‘철(鐵)의 지대추구 연합’이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주식회사 한국의 진정한 개혁은 지대 창출과 추구 행위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권력을 통해 지대 배분권을 독점하고, 로비나 헌금 기부 등을 통해 지대 이익을 불공정하게 획득하는 구조를 타파하는 게 진짜 개혁이며 경제·사회의 구조조정이다. 처방은 전제적 권력의 분산과 견제, 그리고 공정 경쟁이다. 헌법적 수준에서 이들 권력의 인위적 지대 창출을 구조적으로 봉쇄하지 않는 한 이권이나 특혜를 통해 이득을 누리려는 ‘지대추구 사회(rent-seeking society)’를 막기 어렵다.


전국에 100만개의 촛불이 올랐다. 촛불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결집된 변화의 에너지가 박 대통령의 퇴진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지대추구 연합 구조를 해체하는 개헌적 논의와 법률적 장치 마련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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