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매일신문 성명 그 후…지난 시간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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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일보와 매일신문에서 기자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일보 2~3년차 기자 18명은 희망 없는 회사에 좌절했고, 매일신문 차장급 기자들은 어이없는 편집권 침해에 절망했다.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를 낸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협회보는 개인 의견을 전제로 두 기자와 인터뷰했다. 성명이 나온 과정과 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성명 이후 달라진 게 있었는지를 들어봤다.


<성명 그 후…국민일보>
비전 없다고 떠난 기자 보며 이대로 있어선 안되겠다 생각
성명 나왔지만 회사 반응 없어 “솔직히 큰 기대 하지 않았다”


우리 중 한 명이 퇴사했다. 이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회사에 비전이 없다며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선배들은 퇴사하는 기자에게 취재 지역을 바꿔주겠다는 둥 엉뚱한 소리만 했다. 선배들의 현실 인식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8월 중순 레지던스를 하나 빌려 22기부터 24기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욕하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회사에 우리의 불만을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날로 카톡방이 만들어졌다.


사실 우리의 의사 표시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우리 이전에 들어온 21기 선배들을 비롯해 그 위 선배들은 모두 파업을 경험했던 세대였다. 그 이후 세대인 우리는 파업과는 다소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는 다른 궤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배 몇몇에게 여러 차례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선배들은 파업으로도 안 바뀐 회사가 대자보 하나 붙인다고 바뀔 리 없다고 자조했다. 잘못하다간 미운털 박혀 인사 조치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리기도 했다. 결국 우리끼리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성명서 작성은 쉽지 않았다. 팀장은 다음날 기획거리를 가져오라고 하는데, 어차피 해봐야 되지도 않을 성명서를 붙잡고 있으려니 짜증이 났다. 여러 기수가 동시에 쓰다 보니 작업도 더뎠다. 방법론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많았다. 처음엔 사장실이나 노조 게시판 등에 기습적으로 대자보를 붙이려 했다. 하지만 노조위원장·사무국장 선배와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노보에 녹이게 됐다.


성명서는 10월 중순에야 빛을 보게 됐다. 그러나 회사 반응은 너무나 고요하다. 간담회를 하자는 등의 그 어떤 얘기도 없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마음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더 심각해질 것을 우려했기에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끼리 셀프 위로하며 끝나기엔 지난 두 달 반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지난주 토요일, 신입기자를 뽑는 필기시험이 있었다. 누군가는 농담 삼아 “그 시험의 승자는 패자”라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뽑혀서 지금보다 더욱 변화할 회사 분위기 속에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명서가 나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좀 더 지켜보고 싶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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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그 후…매일신문 >
기사 빠질 때도 묻지 못해
할 말 하던 패기는 오래전 일
희망원 관련 첫 보도가 해명 기사라니 이건 아니었다


대구경북 신문 중 가장 큰 영향력. 전국 지역지에서 손꼽히는 명문. 중앙지와 비교해도 어느 하나 뒤처질 것 없는 명성과 역사. 매일신문 기자를 꿈꾼 이유였다.


하지만 기자가 되고선 자부심보다 실망감이 컸다. 기사판단 기준이나 의사결정 과정은 기대와 달랐다. 민감한 기사가 빠질 때도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하면서도 떳떳하게 묻지 못했다. 후배가 선배에게 할 말은 하던 패기는 이미 오래전 일이 됐다. 데스크에 어떤 이야기도 먼저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렇게 입 닫고 살던 우리가 편집권 독립을 외쳤다. 한 기사가 도화선이었다. 인권 유린 문제가 불거진 대구시립희망원의 일방적 해명을 담은 기사가 1면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 1년간 우리는 희망원 사태에 침묵해왔다. 매일신문 사주인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희망원도 수탁해 운영해와서다.



희망원 관련 첫 보도가 해명 기사라니. 누가 봐도 이건 아니었다. 작게나마 품고 있던 매일신문 기자라는 자존심이 무너졌다. 우리는 기자들 전체의 의견을 모았다.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성명을 발표하기 전 편집국장이 간담회를 열었지만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편집권 독립’을 주제로 성명을 발표했다. 편집국장의 사과, 소통기구 마련, 재발방지 대책, 언론윤리에 따라 천주교 문제를 다룰 것을 요구했다. 2000년 이후 입사한 기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기자들이 성명을 낸 건 10여년 만이었다.


편집국장과 다시 만났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열패감에 빠졌고 우리의 용기는 흐지부지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화를 해야만 했다. 편집국장에게 다시 한 번 ‘현실성 있는’ 요구사항을 제시해 수용의사가 담긴 ‘답변’을 받았다.


편집국 소통기구를 부활시키는 것으로 갈등은 일단락됐다. 우리도 편집국장도 한 발씩 물러나 정반합을 찾은 거다. 폭풍 속에 있던 편집국은 이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다. 큰 변화는 없다. 사주든, 누구든 매일신문을 입맛대로 휘두른다면 기자들은 더 이상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경각심을 줬다는 데 의미를 두겠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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