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소문, 소문들

[글로벌 리포트 | 중국]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사시사철 정치의 계절인 한국,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미국 뿐 아니라 지금 베이징의 권부 중난하이(中南海)가 꼭 그렇다. 시진핑(習近平) 2기 체제가 출범하는 제19차 공산당 당대회가 1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년 당대회에선 중국 지도부의 대폭 물갈이가 이뤄진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전임자들이 물려준 관례를 따른다면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집권할 후계자의 윤곽도 19차 당대회에서 미리 드러나게 된다.


오는 24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6중전회(제18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는 당대회의 전초전 성격이 짙다. 때문에 6중전회를 전후한 시기에 권부 내의 물밑 암투가 치열해지는 게 상례였다. 후진타오(胡錦濤) 2기 체제가 출범하던 10년 전에는 6중전회를 보름 앞둔 시점에 ‘정변’급 사건이 일어났다. 상하이방의 거물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서기가 부패 혐의로 전격 체포되면서 실각한 것이다. 이 사건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신의 파벌 인맥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던 전임자 장쩌민(江澤民)에 대한 현직 주석 후진타오의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올해도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하고 시 주석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황싱궈(黃興國) 톈진 대리서기의 낙마를 포함해 지방 당서기의 교체 인사가 줄을 이었다. 군·언론기관에 이어 국영기업 책임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시 주석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것도 과거엔 없던 일이다.


그런 와중에 베이징엔 무성한 소문이 돌고 있다. 그 중 한두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내년 당대회에서 전인대 상임위원장으로 추대되는 형식을 빌어 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이란 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국가주석과 총리는 나란히 5년의 임기를 연임해 10년을 채우는 관례가 깨질 것이란 풍설이다. 시 주석이 리 총리를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원래 경제전문가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에게 정년에 관한 불문율인 ‘7상8하’(七上八下·당대회 시점에 68세 이상이 되면 상무위원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의 예외를 적용해 후임 총리에 앉힌다는 설도 있고 다른 총리 후보자의 이름도 나돈다.


또다른 소문은 내년 당 대회에서 자신의 후계자감을 미리 상무위원으로 발탁해 후계자 수업을 쌓게 하는 관례를 시진핑 주석이 깨뜨릴 것이란 설이다. 시 주석 자신은 이런 관례에 따라 후계자로 굳어졌다. 그는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서열 8위의 상무위원으로 발탁되고 곧 국가부주석으로 임명됐다. 당시 리커창도 함께 상무위원에 올랐으나 서열은 시 주석보다 낮은 9위였다. 후진타오 2기 체제가 출범한 것과 동시에 5년 후의 시진핑 주석-리커창 총리 체제를 내다보는 포석을 깐 것이다.


관행대로라면 내년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인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와 쑨정차이(孫政才) 충칭 서기가 차기 후계자를 넘볼 수 있는 상무위원으로 올라가는 게 무난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시 주석의 의중에 없기 때문에 내년에는 후계 구도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란 설, 2022년 당대회 때 시 주석 은퇴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3의 인물을 골라 권력을 넘길 것이란 설 등이 점점 그럴듯하게 퍼지고 있다. 심지어는 시 주석이 집단지도체제를 총통제로 바꿔 집권기간을 연장할 것이란 설까지 나돈다.


이런 소문들의 공통점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난하이의 높은 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청와대나 백악관과는 달리 언론의 접근 범위에서도 벗어나 있고 대변인은커녕 물어볼 상대방조차 없다. 최종결정 사항만이 발표될 뿐 그 과정이 공개되는 법은 없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특파원은 괴롭다. 제1의 뉴스 소스인 중난하이에 관한 무성한 소문들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소문 가운데 일부가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지만 자칫 인용했다간 대오보가 될 거짓소문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그런 소문을 믿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늘 망설여진다.


그럴 땐 부지런히 발품 팔고 취재하면 어렵지 않게 진실에 근접할 수 있는 한국의 언론 환경이 부러워지곤 한다. 권력 재편을 둘러싼 암투가 본격화될 향후 1년은 베이징 특파원들에게 더욱 괴로운 시간이 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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