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탄압이 일상화된 현실이 서글프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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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참주’ 정치는 자유인의 입을 틀어막고, 말을 왜곡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현상을 정의하고, 기억하고, 예측하는 도구인 언어를 점령하는 폭력은 썩어가는 권력의 습성이다. 제 입맛과 어긋나는 말을 하는 이의 펜을 부러뜨리고 혀를 자르고 낙인을 찍는 탄압을 서슴지 않는다.


2016년, 한국 언론의 풍경은 역사 속 야만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가. 자본민주주의를 기록하는 매일의 ‘사관’들이 겪는 탄압은 달력에 적힌 오늘의 숫자를 눈비비고 다시 봐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MBC 사측은 보도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우려하는 내부의 자정 요구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전보 인사로 대꾸했다. ‘인터뷰 조작 의혹’이 사실이라면 해당 기자를 일벌백계하여 저널리즘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시청자들에게 다짐해야 하는 판국에 되레 인사전횡을 휘두른 것이다.


보도 공정성을 요구하며 간부를 비판한 KBS 기자가 부당한 인사조치를 받은 최근의 사안도 마찬가지다.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취재 부문으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동료들을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바른 말, 바른 보도를 하려는 기자들은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위협받는다. 보도 내용에 대해 고소와 고발이 일상화됐다. 핵심 권력자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기자가 피고소인 신분으로 검찰에 불려가고,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한 ‘편집’기자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기자 개인을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이 매우 이례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과거가 어느덧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명예훼손이며 국가보안법 등을 내세운 탄압이 이제는 언론계의 일상이 됐다.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보도를 단순 전달한 외국인 기자까지 기소하면서 이미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는가.


이같은 현실은 국경없는기자회(RSF)의 ‘세계언론자유지수 2016’ 수치가 방증한다. 한국은 조사대상 180개국 중 70위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2006년 31위에서 문자 그대로 ‘추락’한 것이다. 단체는 “정부는 비판을 참지 못하고 있고, 이미 양극화된 미디어에 간섭하면서 언론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주의의 퇴행은 반드시 언론 탄압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서슬퍼런 권력에 최일선 현장에서 부딪히는 것 역시 기자들이다. 기자들은 시대의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저 월급받는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어야할 의무를 지고 있다. 권력의 서슬퍼런 위협이 펜을 놓고,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물러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더 이상의 퇴행이 없도록 배수의 진을 치고 임해야 할 위기상황이다.


더불어 우리는 하나의 사회현상은 반드시 한 사회의 맥락을 반영함을 기억한다. 현재 ‘법과 위계를 이용한 탄압’은 기자들만 겪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의 이익과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적잖은 시민들이 고초를 당하고 있다.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사측으로부터 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약자가 되레 명예훼손으로 고발된다.


그나마 ‘펜’을 가진 기자들이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시민사회의 전선은 급속도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전투에서 가장 앞장선 이에게는 스스로를 이끌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수난을 이겨낼 것이며, 법을 빙자한 탄압을 이겨낼 것이며, 결국 이겨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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