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트래픽'에 빠진 언론사 디지털 전략

PV 목매는 성과주의 여전
뉴스룸 내 조급증 걸림돌
SNS 등 오픈 플랫폼 활용
"콘텐츠 사업자" 인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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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지난 6일을 ‘중앙일보 온라인 챌린지 데이’로 정하고 각 취재부서 기자들에게 권장사항으로 기자 1인당 1건씩 디지털 온리(Only) 기사 출고를 지시했다. 그 결과, 중앙일보는 이날 당초 목표인 500만 페이지뷰(PV·기사를 클릭해 페이지를 여는 수)를 초과 달성한 764만 PV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기자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여타 취재부서도 트래픽 증가에 공헌했지만 소수의 인턴 기자들이 쓴 말랑 말랑한 연성 기사의 기여도가 큰 데다 ‘챌린지 데이’가 끝나자마자 이전 수준인 400만대 PV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한 기자는 “카카오톡 채널 등에 입점하면서 하루 PV가 200만대에서 400만대로 올라갔지만 정체기를 겪다보니 모멘텀이 필요했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면서도 “에코팀의 인턴 기자 등이 쓴 연성기사로 목표 이상의 PV를 달성했는데 이를 위해 통합뉴스룸을 만든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가 ‘온라인 챌린지 데이’를 정하는 등 트래픽 확대에 나서면서 또다시 디지털전략이 트래픽에 발목을 잡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중앙일보 통합뉴스룸에 위치한 ‘EYE룸’.

반면 중앙일보는 이번 시도를 통합뉴스룸 안착을 위한 다양한 실험 과정 중 하나이고, 이를 통해 축적한 경험과 데이터 등을 향후 새로운 디지털 전략을 실행하는데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중앙 관계자는 “중앙일보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경험과 데이터를 얻고 있다”며 “하루 동안 실험인 챌린지 데이 역시 개선·보완점은 무엇이고 얻은 정보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방안을 찾기 위한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중앙 통합뉴스룸 출범 100일(10월25일)을 앞두고 실시한 이번 실험에 대해 중앙 내부에서조차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제약 많은 언론사 디지털 전략
트래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언론사는 손에 꼽힐 정도다. 특히 규모가 작은 언론사일수록 트래픽 외풍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디지털 전략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데다 다른 제품과 달리 ‘재고’의 개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팔리든 안 팔리든 매일 새로운 것을 생산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다 디지털상품이어서 경쟁자가 수분 이내 복사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짧다는 점도 디지털 전략이 자리 잡는데 장애 요인이다.


그럼에도 언론계가 중앙의 이번 실험에 주목하는 이유는 중앙의 경우 디지털 중심의 통합뉴스룸 구축을 위해 오너가 힘을 실어주는 등 인적·물적 자원을 많이 투입했기 때문이다. 중앙의 행보를 벤치마킹하려는 언론사에 어떤 식이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디지털은 전략을 펴는 데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고 개선 작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분야다.


그렇더라도 트래픽에 또다시 목매는 것은 단기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것이어서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성과주의에 발목이 잡힐 경우 디지털 퍼스트 등을 위한 원래 목표에서 비껴나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조급증에 사로잡힌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자사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언론계 중론이다.


이희정 한국일보 디지털부문장은 “시장 상황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3년 뒤를 예상하기 힘들다”며 “각 사에 맞는 디지털 전략의 정체성을 우선 세운 뒤 이에 따라 조직의 무게 중심 이동과 사람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 구성원 대다수가 ‘디지털퍼스트’ 등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지만 여전히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디지털 전략의 문제점과 선결 과제 등을 되짚어봤다.

수익 문제서 제동 걸리는 디지털 논의
‘기·승·전·트래픽’. 디지털 관련된 논의의 결론이 트래픽으로 귀결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디지털 분야에서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다보니 ‘헐값’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래픽에 목매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단기간에 자사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리기란 말처럼 쉽지 않는 반면 경영진을 위한 ‘보고거리’는 항상 준비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내밀 수 있는 것이 여전히 온라인 매출과 트래픽 밖에 없다는 게 언론계 고민이다.


한 경제지 온라인담당 고위 간부는 “PC에선 클릭당 7~8원 가량의 매출이 생긴다고 하면 모바일의 경우 3원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모바일 화면이 PC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붙일 수 있는 광고마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디지털 매출이 PC기반에서 나오다 보니 디지털 전략의 중심이 여전히 PC에 있고 ‘포털 종속형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간 신문이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광고를 나르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PC시절부터 달라졌다. 신문은 온라인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광고 플랫폼의 지위를 포털에 넘기고 디지털 영역에선 PP(콘텐츠제공사업자)로 전락했다. 광고 매출의 주도권을 좋든 싫든 포털에 넘긴 셈이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언론계를 둘러싼 환경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용자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플랫폼은 종이신문·TV 등 전통매체에서 모바일로, 이용패턴은 편집자 등이 던지는 의제에서 가까운 지인들이 SNS로 추천하는 뉴스로 이동하고 있다. 전통매체가 광고플랫폼으로써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언론들은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기성과 집착이 가장 큰 걸림돌
디지털 전략은 한 두 해에 승부를 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뉴스룸 안에서의 조급증이 디지털 전략을 수립·실행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게 언론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반면 매일 나오는 트래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언론사를 찾긴 쉽지 않다. 특히 디지털 혁신에 대한 내부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추가적인 내부동력을 얻기 위해선 디지털 전환에 따른 일정 성과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트래픽은 단기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지표다.


하지만 트래픽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기 때문에 디지털 성과에 대한 평가 기준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하루하루 자사 사이트로 유입되는 트래픽을 가지고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이런 평가 방식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고 언론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긴 안목을 가지고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는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한겨레 편집국 ‘슈퍼 데스크’.

이 때문에 ‘다 플랫폼 시대’에 걸맞게 자사 사이트뿐 아니라 ‘오픈 플랫폼’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중앙뿐 아니라 조선일보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이어 지난 8일부터 카카오톡 채널에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중앙이나 조선의 경우 일정 수 이상의 충성 독자가 확보돼야 디지털 수익사업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종합일간지 관계자는 “독자들은 기사가 어디에서 생산되는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기억도 못한다”며 “자사 사이트 트래픽 순위에만 매달리게 되는데 오픈 플랫폼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종이신문 부수에다 디지털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를 합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종이신문 구독료의 경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찍으면 찍을수록 손해를 본다. 그동안 광고가 이를 상쇄하고 수익까지 남겼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종이신문 부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온라인·모바일을 통한 콘텐츠 유통까지 합산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할 때라는 게 언론계 중론이다. 이렇게 되면 제작비뿐 아니라 배달·마케팅 비용까지 아낄 수 있고, 그 여력을 디지털 콘텐츠 등에 재투자할 수 있다.


언론계 역시 이런 필요성을 알지만 언론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논의는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언론계 관계자는 “2년 전쯤 매경·한경 등을 중심으로 PDF가판을 유료부수로 넣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며 “온라인·모바일 등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를 유가부수와 함께 합산하는 방식이 올바른 방향이지만 온라인 독자들의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지 않아 논의가 소강상태”라고 말했다.

조직 혁신만큼 인사 혁신도 관건
세 번째 디지털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인사 역시 ‘편집국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제로 부산일보는 지난 6월말 조직개편 이후 후속 인사에서 입사 11개월 차 이혜미 기자를 SNS팀장에 앉히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이 팀장은 2명의 소셜에디터와 1명의 영상PD, 5명의 대학생 인턴들과 함께 부산일보 온라인 부문 SNS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이는 젊은 기자들에게 전권을 줘야 한다는 의미보다 모바일 프렌들리한 젊은 기자들에게 일정 권한을 줘 자유롭게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뉴스룸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는 걸 뜻한다.


심석태 SBS 뉴미디어국장은 지난달 5일 열린 ‘제1회 한국 저널리즘 콘퍼런스-미디어, 혁신 현장에서 길을 묻다’에서 스브스뉴스의 성공요인에 대해 “기자들이 만든 뉴스를 안 본다고 하니 뉴스 소비자가 뉴스를 직접 만들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학생 인턴 10명을 채용해 그들의 관심 분야와 선호하는 뉴스전달 방식대로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2~3년마다 단행되는 인사 탓에 ‘제로 베이스’에서 모든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조직운영 방식 역시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엄호동 헤럴드경제 모바일편집장 겸 사내벤처총괄팀장은 “여러 해 동안 디지털 전략을 운영해왔지만 여전히 변하지 못했다고 자성했던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에 나온 모델을 우리 언론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디지털 영역에서는 플랫폼 사업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콘텐츠 사업자라는 인식으로 디지털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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