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불친절한 KBS 지진방송

화면해설·수화통역 '사각지대'
DMB·라디오 수신불량률 높아

  • 페이스북
  • 트위치

경북 경주시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유례없는 지진으로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정설이 깨지면서 재난주관 방송사 KBS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대응체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장애인 등 재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제공, 디지털미디어방송(DMB)·FM라디오 음영지역 해소 등이 절실하다.


지난 12일 1·2차 지진 당시 ‘늦고 미흡한’ 재난보도로 집중포화를 맞았던 KBS는 이후 지진이 발생하자 10분 안에 특보를 진행하며 개선된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재난 취약계층을 고려한 보도는 하고 있지 않다.


경주농아인협회 관계자는 이번 재난방송과 관련 “어떤 방송도 농인들을 위한 수화통역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집이 흔들려 붕괴되는 줄 알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니 사람들이 차량을 빼고 여기저기 겁먹은 표정으로 나가고 있었다. 당황해 공터로 따라간 후 폰에 온 문자들을 확인해 지진인 것을 인식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KBS 홈페이지에서 지진발생 후 이뤄진 ‘속보·특보’ 다시보기를 확인해보면 어떤 보도도 수화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7월 개정한 재난보도준칙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항목을 통해 “노약자, 심신 장애인이나 외국인 등의 특정 계층에게도 재난정보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별도의 전달방법을 강구한다” 등을 명시했지만 이번 상황에선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KBS에서 수화방송을 제공하는 뉴스 프로그램은 ‘930뉴스(1TV)’, ‘지구촌뉴스(2TV)’, ‘뉴스12(1TV)’, ‘뉴스타임(2TV)’, ‘뉴스5(1TV)’, ‘글로벌24(2TV)’ 등이다. 수화통역사 4명이 스케줄 근무를 통해 해당 시간대에만 방문한다. 이때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면 수화통역 제공 자체가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지난 7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청자미디어재단으로부터 받은 ‘지상파 4사와 종편 4사, 보도전문채널 2사의 프로그램별 장애인방송 편성실적’과 방통위의 ‘2015년도 장애인방송 편성의무 평가 결과’를 종합하면 KBS 1TV 보도프로그램 중 4분의 1만이 수화통역을 제공했다. 화면해설은 아예 하지 않았다. 타 방송사 역시 정부가 정한 장애인 방송 편성비율(지상파 화면해설과 수화통역 각각 10%·5%, 종편·보도전문채널 각각 8%·4%)을 간신히 넘기거나 밑도는 선을 유지했다.


지진은 풍수해와는 달리 예측이 불가능하고 어떤 재난보다도 신속한 대응이 요구되는 만큼 인력확충이나 비상근무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해 보인다. KBS 홍보팀 관계자는 “이들을 365일 24시간 대기시키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지진 후 재난방송 시스템 점검 및 보완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턱없이 낮은 지상파DMB와 FM라디오 수신율 개선을 위한 방안마련도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 2014년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과 함께 지상파 DMB를 재난방송 매체로 지정하고 도로와 철도 터널 등 시설관리 사업자에게 중계기 설치 의무를 지웠지만 지난해 말 방통위의 재난방송 수신환경 실태조사 결과 10곳 중 8곳 이상에서 방송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DMB와 라디오 등은 재난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맡는 매체다.


이는 전국에 산재한 3026곳(도로·철도터널, 지하철 지하공간) 5178개의 중계기를 대상으로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가 내보내는 방송 수신율을 조사한 결과인데 DMB는 83.5%, 라디오는 87.5%가 ‘먹통’이었다. 철도 터널은 수신불량률이 99%에 달했다.
전반적으로 지역의 DMB, 라디오 수신불량률이 수도권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음영지역 해소를 위해선 중계설비를 추가로 설치하면 될 일이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표면적으론 개정된 법안에 제재조항이 없어 도로·철도 터널 등을 소유, 관리하는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대당 2000만원 이상을 부담(방통위 2000만원 지원)해야하는 설비 설치에 미온적인 것이지만 이면에는 UHD도입과 관련한 산업적 측면의 고민이 깃들어 있다.


지상파들은 고정형뿐 아니라 이동형 방송이 가능한 UHD가 지상파 DMB를 대체할 가능성이 큰 만큼 신규 투자를 보류하고 있다. 지난 8월 시작된 HD DMB도입을 KBS 등 지상파가 주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통위는 관련 논의를 갓 2회 진행하며 아직 교통정리를 하지 못했다. 이에 중계기 설치 역시 지난해 총 26곳 40대, 올해 36곳 73대를 지원하는 데 그쳤다. 음영지역 완전 해소를 위해선 도로·철도터널에는 현재(도로터널 3101개, 철도터널 1223개)보다 8~10배, 지하철 지하공간(854개)에는 2배 이상의 중계기가 설치돼야 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우선은 재난 시 여러 매체들을 어떻게 이용할지 매뉴얼 가이드라인 점검부터 하는 게 시급하다”며 “UHD전환 추세 속에서 수익이 안 나는 플랫폼에 다시 투자를 할 지 방송사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큰 그림을 놓고 이들 플랫폼에 어떤 공공적 책무를 부여할지 미래부, 방통위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