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넓은 핀란드도 난민 문제 '골치'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최원석 YTN 기자·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 교육 석사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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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YTN 기자

8년 만에 핀란드에 돌아와 보니 부쩍 늘어난 난민들이 눈에 띄었다. 이슬람식 복장인 ‘차도르’나 ‘히잡’을 입은 여성들을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쇼핑몰에 삼삼오오 모인 중동계 남성들도 쉽게 마주치게 되었다. 짐작컨대 ‘장물’을 팔려는 듯, 외국인 관광객에게 휴대전화를 연신 흔들어 보이는 호객꾼도 만났다. 핀란드 문화에 비춰봤을 때 다소 낯선 풍경이다.


핀란드 정부 통계를 참고해 보면 이들 대부분은 이라크 난민이다. 지난해 9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를 피해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리던 시기, 일부가 북유럽으로 넘어왔다. 시리아계 난민들은 스웨덴에 대부분 정착했고, 핀란드에는 이라크계와 아프가니스탄 난민 등 3만2000명이 들어왔다. 올해 7월 기준 1만7000명이 결과를 기다리는데, 이라크 난민 신청자들의 경우 거절 비율이 75%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왔다.


핀란드 언론은 지난 8일 헬싱키에서 열린 난민들의 항의 집회에 주목했다. 핀란드 정부가 난민 심사 기준을 강화한 일을 비난하는 시위였다. 앞서 지난 5월, 이민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일부 지역의 치안이 개선됐다는 내용을 포함한 새로운 심사 기준을 공개했다. 안전해졌으니 돌아가라는 핀란드 정부의 속내를 알게 된 난민들은 “강제 출국 중단하라” “아프가니스탄은 테러리스트에게만 안전하다”는 구호들로 거세게 반발했다.


강경해진 정부 기조 때문에 난민 심사가 졸속으로 이뤄진다는 비판도 일었다. 핀란드 최대 언론사 헬싱키 사노맛(Helsingin Sanomat)은 지난 4일 이민국 직원들의 우려스런 목소리를 전했다. 심사 담당자 일부는 난민 심사서류를 빨리 처리하느라 거절 건수를 늘리는 압박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이라크나 아프간 현지 상황을 파악할 만한 구체적인 정보나 자료 없이 심사를 진행한다며 이민국에서 일하기 부끄러워졌다고 대답한 직원도 있었다.


전반적인 언론 분위기로 보면 핀란드 정부의 소극적인 난민 수용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실제 핀란드인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당혹스러움도 적지 않다. 난민들이 연루된 사건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중부 소도시 까야니(Kajaani)에서 난민 두 명이 체포됐다. 강도 및 살인 사건 용의자였다. 이들은 50대 핀란드인으로부터 금품을 빼앗으려다 살해한 뒤 달아나고, 또 다른 주민에게선 휴대전화를 빼앗은 혐의를 받았다. 주민 숫자가 1000명밖에 되지 않는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용의자 두 명은 1년 전쯤 핀란드에 온 이라크계 난민이었다.


8월에는 24살 이라크 남성이 IS 가담 전력으로 붙잡혔다. 핀란드 국립수사국(NBI)은 지난 2014년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에서 IS가 벌인 대규모 학살에 이 남성이 참여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당시 IS는 이 지역에서 1700여 명을 집단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핀란드 국립수사국은 지난해에도 IS 가담자 여러 명을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난민들이 다소 황당한 이유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핀란드 북부 도시 오울루에서는 이라크인 남성 70여 명이 수용 시설을 나와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은 배식 받은 오트밀죽을 취재진에게 보여주면서 “개나 여자들에게나 줄 저질 식사”라고 성을 냈다. 아침식사로 오트밀을 먹고 거의 끼니마다 감자를 먹는 핀란드인 입장에선 기가 차는 불만이었다. 결국 이 시설은 감자를 쌀로 바꾸고, 보리밥이나 죽을 메뉴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추운 날씨와 맛없는 음식을 견디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난민이 늘고 있는 추세는 핀란드 정부 입장에서 그나마 달가운 일이다. 하지만 여러 외신들이 지적하듯, 대규모 난민 수용 경험이 부족한 핀란드가 곳곳에서 일어나는 난민 관련 문제에 여러모로 당혹스러워 하는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핀란드가 2017년 난민 예산을 절반으로 깎고, 인원도 1만명 가량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는 뉴스가 사뭇 심각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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