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그의 카메라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왔다

사진기자 부부들의 사랑이야기

  • 페이스북
  • 트위치

사진기자들은 가족처럼 끈끈한 동료애를 자랑한다. 여기 동료를 넘어 진짜 가족이 된 세 부부가 있다. 현장에선 양보 없는 경쟁자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사진을 존중하는 세 부부를 직접 만났다.



앵글 너머로 아직도 설레임 한가득

유성호 오마이뉴스 기자-이정아 한겨레 사진기획팀장 부부


카메라를 든 남자가 앵글 속으로 들어왔다. '찰칵.' 2005년 이정아 한겨레 기자는 취재현장에서 만난 유성호 오마이뉴스 기자를 찍고 있었다. "현장으로 향해야 할 카메라가 제 앞에 있더라고요. 놀라긴 했지만 이 사람이 절 좋아하는지 그땐 몰랐어요."(유성호)


이 기자는 동기인 유 기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성실하고 예의 바른 모습에 호감이 갔다. 그 마음을 알았던 한겨레 사진기자 선배들은 유 기자에게 밥이나 술을 자주 샀다. 그가 나온 사진을 이 기자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한겨레 사진부의 적극적인 구애(?) 덕에 이들의 사랑이 시작됐다.


▲이정아 한겨레 사진기획팀장-유성호 오마이뉴스 기자 부부와 딸 하연(7).

결혼 후 9년이 흐른 지금, 이 기자는 아직도 설렘 가득한 앵글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을까? 부부의 단골카페에서 만난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남편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냈다.


"분명히 동기인데 제 데스크인 줄 안다니까요?" 어느 날 만족스러운 사진을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잘 찍었어? 후회 없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단다. 맞은편에서 유 기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부장도 그렇게는 말 안 해요. 이달의 보도사진상도 받은 건데. 하여튼 자기가 제일 잘 찍는 줄 알아요."(이정아)


유 기자는 "아내가 더 좋은 사진을 찍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며 "앞으로 아내의 사진 앞에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그 뒤로 한참이나 폭로전이 오갔지만, 사실 '선수끼리' 만나 좋은 점이 더 많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일을 속속들이 이해한다. 현장에선 영원한 경쟁자일지라도 카메라를 둘러싼 보람과 고민, 기쁨과 슬픔을 평생 함께 나눌 수도 있다.


부부는 "양쪽 회사의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생활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던 이 기자에게 "널 뽑았을 땐 그런 부분까지 고려한 거다.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라"던 선배의 말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선배들은 아이를 챙겨야 하는 부부가 같은 현장에 나서야 할 때면 취재일정을 조율해 주곤 한다.


함께 살며 쌓아온 신뢰만큼 동료애도 커졌다. 남편은 아내가 찍은 사진엔 취재원과 대화하며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고 했다. 동료로서 남편을 존경한다는 아내는 요즘 퇴근 후 TV 리모컨을 들고 잠이 든 남편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모습이 짠해요. 사진 찍는 게 제 애정표현이죠”라며 활짝 웃는 그에게서 10년 전 몰래 사진을 찍으며 설렜을 모습을 보는 듯했다.



----------------------------------------------------------------------------------------------------


“아내는 훌륭한 후배, 남편은 본받을 게 많은 선배”

허정호 세계일보 사진부장-조수정 뉴시스 기자 부부


“허정호 계 탔네!” “조수정 받아줄 사람은 허정호뿐!” 허정호 세계일보 기자와 조수정 뉴시스 기자가 사귄다는 소문이 퍼지자 동료 사진기자 사이에선 난리가 났다.


“모두 예쁘게 봐주셨어요. 일하랬더니 연애하고 있다고 장난치는 분도 있었지만요.(웃음) ‘허정호는 내가 보장한다, 허정호 A/S는 내게 맡겨라, 결혼하면 축의금 천만 원 주겠다’면서 응원해주셨죠.”(조수정)


연애 3년여 동안 둘은 주로 취재현장 아니면 술자리에서 데이트를 했다.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마지막에 남는 건 대개 두 사람뿐이었다. 둘 다 술을 좋아해서다. 2010년 신혼여행도 맥주를 마시기 위해 독일로 갔을 정도다. 퇴근 후 맥주 한잔은 부부의 낙이었다. 그러나 2년 전 허 기자가 부장이 되면서 얼굴 보기도 어려워졌다.


▲조수정 뉴시스 기자-허정호 세계일보 사진부장 부부와 맏아들 준우(6), 둘째아들 윤우(4).

누구보다 남편의 일을 잘 이해하는 조 기자는 “같은 집에 사는데 출퇴근 시간이 달라 주말부부 같다”면서도 “단 하루 쉬는 토요일에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남편”이라고 치켜세웠다. 허 기자는 이런 아내가 적잖이 고마운 눈치였다.


남편이기 전에 사진기자 선배로서, 허 기자가 조 기자의 사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와이프는 인터뷰나 회의처럼 인물 사진에 강해요. 사람의 특징이나 감정을 훌륭하게 표현하죠.” (허정호)


아내에게 남편은 본받을 게 많은 선배다. 하지만 조 기자는 서운했던 이야기부터 꺼냈다. “집에서 맥주 한잔 하고 있는데 애들 아빠가 대뜸 ‘생각 좀 하고 사진 찍으라’고 하더라고요.”(조수정)


허 기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진짜 그런 얘길 했어?” 반문했다.


“딱 한 번. 지금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요.(웃음) 그땐 황당했지만 이젠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남편이 사진과 함께 에세이를 쓰곤 했는데 그걸 보면서 짧은 사진설명이라도 내 생각을 담아야 한다는 걸 느꼈죠. 남편 따라 책도 많이 읽고 있어요.”(조수정) 허정호·조수정 부부가 “좋은 사람끼리 만났다”는 동료들의 칭찬을 듣는 이유다.


둘 사이엔 듬직한 맏아들(6세)과 개구쟁이 둘째 아들(4세)이 있다. 조 기자는 남편을 가리키며 “아들 셋을 키우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따뜻한 눈으로 아내를 보던 허 기자가 멋쩍게 웃었다.



----------------------------------------------------------------------------------------------------


“알콩달콩 부부, 현장에선 경쟁자죠”

한재호 국방일보 기자-이지은 연합뉴스 기자 부부


뽀얗고 앳된 얼굴에 선한 눈매. 처음부터 눈길이 갔다. 한재호 국방일보 기자(당시 CBS노컷뉴스)가 본 이지은 연합뉴스 기자는 그랬다. 그는 미국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다 한국에 왔다는 이 기자를 현장에서 봤을 때 "후배가 열심히 하는 게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같은 연차인 데다 동갑이었다.


한 기자는 신선한 시각이 담긴 이 기자의 사진이 좋았다. "2009년 당시 국내에선 볼 수 없는 사진이었어요. 기존의 틀을 깨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거였죠. 나름 사진 잘 찍는다고 자부했는데 지은이에게 배우고 싶은 게 있었어요. 물론 라이벌 의식도 생겼죠.“(한재호)



▲이지은 연합뉴스 기자-한재호 국방일보 기자 부부와 아들 이안(2).

그는 매일 이 기자가 찍은 사진을 검색하며 보고 또 봤다. 그건 이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사진을 얼마나 찾아봤는지 포털사이트에 '한재호'라고 검색하면 '이지은'이 연관검색어로 떴고, '이지은'하면 '한재호'가 나올 정도였다. “그걸 보고 둘 다 닭살 돋았어요.(웃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동료들에게 쉽게 밝힐 순 없었다. "헤어지면 둘 중 하나는 이 바닥 떠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애를 결정했다. 이런 걱정과 달리 동료들은 이들의 연애를 바라고 있었다. 조수정·허정호 부부 결혼식에서 모 선배가 한 기자에게 장미꽃을 쥐여주며 "지은이한테 고백해!"라고 부추겼다.


"엉겁결에 무릎까지 꿇고 지은이에게 장미꽃을 줬어요. 이미 사귀고 있었는데 모르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사진기자가 다 모인 자리에서 고백하게 된 거죠. 하하. 2012년 결혼해 8개월 된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한재호)


집에선 알콩달콩한 부부지만 현장에선 양보 없는 경쟁자다. 특히 한 기자가 뉴스1으로 자리를 옮겼을 땐 '통신사 매치'가 치열했었다. 사진 전반에 대한 고민은 나누지만 각자의 사진이나 회사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지난해 한 기자가 국방일보로 이직한 뒤에도 여전히 깨지지 않는 불문율이다.


부부에게 사진은 가족의 삶 자체가 됐다. 사진기자로 현장에 나선 지 만 10년이 된 이들에게 서로를 향한 존경과 사랑은 큰 힘이 된다. “서로의 직업에 대한 신비감이 없다는 것 빼고 다 좋아요.(웃음) 경쟁하면서 때론 응원하면서 오랫동안 행복한 사진기자 부부로 지내고 싶습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