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마이크를 빼앗긴 사람들…진실을 향한 그들의 도전

해직언론인이 사는 법

퇴직금 받아온 날 집사람이 이걸 받아오면 어떻게 하냐.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받질 말아야지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당혹스러웠죠. 벌써 4년이 지났네요. 가족들은 제 몰래 포털 사이트에서 제 이름을 쳐서 찾아봐요. 복직을 빨리 했으면 하는 마음이겠지요.” -정영하(MBC)

 

처음엔 집사람이 씩씩했는데 시간이 길어지니까 굉장히 타들어하는 것 같아요. 애들이 학교에서 쟤네 아빠는 해직자야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은 거죠.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이 저를 소개할 때 ‘MBC 해직기자 이용마입니다란 소리도 듣기 싫어지더라고요.” -이용마(MBC)

 

우리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에 해직됐어요. 벌써 시간이 흘러 중학교 입학할 때도 해직상태일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아이한테도 안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고, 그때만큼은 꼭 복직이 됐음 좋겠어요.” -박성호(MBC)

 

뉴스타파도 훌륭한 매체지만 계속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란 느낌이 들어요. YTN에 대한 애정, 그리고 거기에 최적화된 기자로서 반평생을 살아와서 그런가 봐요.” -현덕수(YTN)

 

▲왼쪽부터 MBC 이용마, 정영하, 박성호 기자(위)와 YTN 현덕수, 조승호, 노종면 기자(아래).


지난 2008106, YTN 기자 6명이 해직됐다.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의 특보출신인 구본홍 사장이 선임되는 것을 반대했단 이유에서다. 그로부터 4년 뒤, MBC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파업은 7명의 무더기 해고와 수십 명의 징계를 낳았다. 언론계를 들썩이게 한 파업이었지만 권력의 칼날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YTN의 해직 기자 6명 중 3명은 복귀하지 못했고, MBC의 해직자들은 단 한명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해직 언론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기자협회보는 지난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당시 파업으로 해직된 언론인(박성호, 이용마, 정영하,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을 만났다.

 

근황이 궁금하다.

정영하=지난해 말 사측이 조합 집행부에 업무복귀 발령을 내서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조합에 돌아오게 됐다. 사측이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상명하복식 문화를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있고, 순응하지 않으면 인사고과 평가에서 최하점을 주고 있다.


이용마=파업 마치고 노조 홍보국장에서 물러난 뒤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TV에서 이용마의 한국정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정치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고, 최근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박성호=언론학 박사를 수료하고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최근엔 한창 저널리즘의 지형’(가제)이라는 책을 집필하느라 바빴다. 또 방송기자연합회의 편집위원장으로서 직접 취재현장을 뛰진 못하지만 타사 기자들의 취재경험과 고민,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있다.


노종면=‘일파만파어플 개발에 한창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파만파는 집단 지성에 기반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로, 오는 9월말이나 10월에 오픈을 앞두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시민편집단이 골라낸 뉴스를 어플과 페이스북을 통해 유통하는 구조다. 일파만파는 소수의 소비자들이라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이용하는 플랫폼이 되는 게 목표다. 연예뉴스가 난무한 플랫폼이 아닌 이슈가 중점이 된 곳 말이다.


조승호=YTN지부 노조에서 노보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고, 방송기자연합회의 정책위원장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맡게 됐다 최근에는 일파만파의 에디터로서 뉴스를 관리하는 일을 준비 중이다.


현덕수=해직된 이후 한동안은 YTN의 기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그러다 2014년 대법원 판결이 나고 원상회복이 사실상 요원해진 상황에서, 해직기자로서 나의 존재이유와 뉴스타파가 지향하고자 하는 언론 지형의 개선점이 맞아떨어져 합류하게 됐다.

 

▲이용마 MBC 기자가 국민TV '이용마의 한국정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과 대학 강단에 선 모습.


MBC, YTN 뉴스 보나.

정영하=가끔 본다. 그런데 보다가 못 보겠다. 볼게 없다.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있는 아이템 자체가 없고, 하루에 무슨 이슈가 있었는지도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망가졌다.


노종면=주로 페이스북 통해서 우연히 보게 될 때 반갑다. 1년반 사이 YTN의 페북은 급성장했다. 사건사고 영상 위주로 콘텐츠의 날것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조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게 우선돼야 하는데, 블랙박스 동영상 등으로 연성화 돼가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현덕수=페북의 경우 자극적이긴 하지만 그나마 YTN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본 방송이 현안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이슈에 눈을 감으면서 무슨 일이 터지면 YTN을 본다라는 이미지가 사라졌는데, 페북의 제보 영상이 자극적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거 제보해야겠다라는 인식을 다시금 새겨준 것 같다.


조승호=방송 뉴스 잘 안 본다. 보면 성질난다. 중요 이슈가 나왔을 때 누락되는 게 많다. 그나마 보도를 할 때면 기계적 중립만 취할 뿐이다.

   

▲지난 6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정언론 바로세우기 콘서트' 현장.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와 최승호, 정영하, 조승호, 노종면 등 해직 언론인. (언론노조 제공)

공영방송의 독립성 문제 어떻게 보는가.

이용마=군사정권 시절에는 강압에 의해 언론이 이용됐다면 지금은 자율적으로 정권에 유착한다. 정권을 장악한 사람과 경영진이 공동운명체가 된 것이다.


박성호=공영방송은 정권의 정치적 몸종과 다름없다. 통제에 맞선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려는 구성원들과 스스로 내전 상황을 만들다보니, 사내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권을 후견 세력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노종면=정권에 충성스럽다고 판단되는 인물들이 거듭 간부로 선임되고 보도의 자율성을 최소한도로 보장해준 보도국장 선출제도 일거에 없애버렸다.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앵커와 기자들이 내쳐지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조승호=예전에는 부당한 게 있으면 기자들이 반론을 제기하고 데스크와 싸워가며 합의점을 찾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다. 조금 반론을 내놓으면 데스크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서 징계하고, 내부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아예 없어졌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다수가 집단적으로 적극적인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는 9월말 크라우드 뉴스서비스 '일파만파' 오픈을 앞두고 있는 노종면 YTN 기자.

언론인 개인의 책임도 있다고 보는가.

정영하=현재의 MBC 상황은 간단히 볼만한 상황이 아니다. 32명의 노조원들이 인천, 수원, 일산, 광화문 등으로 유배가있고, 상암 내에서도 보도와 관련없는 곳으로 가있는 기자들이 90여명이다. 이들에게 투사가 되라고 하기 힘든 구조다.


이용마=일제시대에 다수가 순응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잘못됐다고 책임을 물을 순 없는 것과 같다. 정권의 모진 탄압이 지속되고 내부 구성원들은 사실상 물갈이 된 상황에서 왜 저항하지 않느냐고 할 순 없다.


박성호=패배감이나 무기력증 등의 문제는 있다. 승진을 못하고 한직에 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아니라, 저널리스트가 저널리스트로서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실존과 정체성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노종면=데스크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는 권한으로 보고 안된다고 하면 말지라는 생각이 공고화되는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본질적인 문제는 권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책임과 대가를 분명히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출입처 제도 또한 최소한으로 한정시키는 방향으로 취재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덕수=왜곡된 상황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기록,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뉴스타파에서 리포트를 하고 있는 현덕수 YTN 기자.

대안언론에 대해서.

이용마=한계와 발전가능성 두 측면이 있다. 정보의 확산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주류언론이 제 기능 못하고 사람들이 새로운 매체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대안매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박성호=기존 언론이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것 보지 않은 것, 빈 공간을 짚어내고 공론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향력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공영방송 등 주류 매체들이 마땅히 했어야 할 의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고,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점이 중요하다.


정영하=뉴스타파는 맨파워가 엄청난 매체라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이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을 자유롭게 문제제기하고, 제일 핫한 아이템을 내세우면서 굵직한 제보를 받고 있다.


노종면=대다수 미디어들이 좋은 기사를 적지 않게 생산해내고 있지만, 그것이 전면에서 많이 소비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네이버와 다음 포털을 지난해 연말부터 분석했는데, 이슈 연관성이 떨어진 기사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의 언론이 좋은 기사를 생산하지 못하는 걸로 오해할 수 있다. 일파만파는 시민편집단을 기준으로 빅데이터를 분석해 편집 능력 등을 가중치로 두는 등의 방법으로 좋은 뉴스를 선별할 예정이다.


현덕수=뉴스타파의 경우 39000여명의 회원들의 모금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류 언론이 견지하지 못하고 있는 비판적인 시각을 대안언론이 해소해주는 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왼쪽부터 MBC의 박성호, 이용마, 정영하(위), YTN의 현덕수, 조승호, 노종면 기자(아래).

다시 돌아온다면.

정영하=가족같은 문화, 조직적 유대감을 되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하겠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명하복으로 강압적으로 지시받던 제작 문화도 없어질 것이고 보도 자유도 되살아날 것이다.


이용마=우리가 170일동안 파업했을 때 주류언론들은 보도를 거의 안했다. 그걸 보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관심 있게 약자에 관한 이야기를 보도했었나등의 반성을 하게 됐다. 다시 돌아간다면 소외되고 억압된 사람들을 위한 보도를 하고 싶다.


박성호=손석희 선배의 'JTBC뉴스룸'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었는데"라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컸다. 복귀를 하게 된다면 선후배들과 합심해서 손선배에게 미안할 정도로 좋은 뉴스를 만들고 싶다.


현덕수=해직 초기에는 선배와 후배의 가교역할 하면서 취재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싶단 생각이 대단히 강했는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그게 가능할까라는 개인적 의문이 든다. 이제는 직접 취재현장에 기여하는 것보다, 후배들이 흔들림 없이 눈치안보고 보도할 수 있는 바람직한 환경을 만들고 싶다.


조승호=지금 현재 동기들이 부장, 부국장을 하고 있다. 내가 돌아가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만약 그게 안되면 일선 기자로 뛰면 되지 않겠나. 후배 밑에서 평기자로 열심히 일할 자신 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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