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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난 지금도 기자, 현장의 울림 전하고 싶어”

[밖에서 본 기자, 밖에서 본 언론] (7)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

김성후·김달아 기자2016.08.13 11:20:30

기자 5년차 ‘뭐하고 있나’ 자문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소설 집필
하루에 8시간 이상 쓰고 또 써

한겨레문학상으로 소설가 등단
어느 날 ‘울컥해서’ 회사에 사표
1년 수입 30만원, 맥주병 팔기도

문학상 4개 당선으로 필명 날려
20~30대 초반 청년들에게 주목
간판에 집착하는 한국사회 문제

신문, 공급자 위주·정파성 강해
기자, 다른 직업 비해 기회 많아
틈틈이 책 쓰고 커리어 쌓아야


장강명 소설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알았다. 그가 이달 중순 출간 예정인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온라인에 사전연재하고 있다는 걸. 그동안 올라온 연재물을 몇 편 읽으면서 인터뷰 하고서도 몰랐던 그의 생애 궤적들이 한층 뚜렷하게 다가왔다. 12년 일한 기자를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울컥해서’ 그만두고 소설쓰기에 덤볐다. 빈 맥주병을 마트에 가져다주고 돈을 받으면서 하루에 8시간 넘게 쓰고 또 썼다. 1년간 장편소설을 다섯 편 썼지만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다. 사방이 막힌 것 같았다. 번민과 후회가 이어졌고, 버텨온 의지는 흔들렸다. 그럴수록 써야만 했다. 그러다가 운 좋게 문학상 수상 소식이 날아들었고,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등의 작품으로 필명을 얻게 됐다. 지난 5일 서울 신도림역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장강명 소설가는 “역사의 중심에서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싶어 기자가 됐다”며 “소설가도 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대의 현장을 취재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주요 인물로 등장한 기자들
-소설가 장강명하면 ‘기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프리미엄이죠. 기자 출신 소설가가 많아요. 김훈 선생 말고도 더 있는데, 제가 주목받고 있어서 죄송하죠.”


-기자가 작품에 많이 등장합니다.
“아는 바닥이라 써먹으려고요.(웃음) 제 소설에 기자가 많이 등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지간한 소설에도 많이 나옵니다. 김진명 장편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도 기자고, ‘오베라는 남자’에도 기자가 나옵니다. 소설적 사건에서 기자는 중요 등장인물이죠.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 같아요.” ‘표백’,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주간지 기자, ‘댓글부대’는 신문기자, ‘한국이 싫어서’는 방송기자가 주요 인물로 그려진다.


-기자 등장인물에서 ‘장강명’이 투영된 인물이 있나요.
“‘한국이 싫어서’의 지명이나 ‘표백’의 휘영도 저였죠. 기자 캐릭터에 애정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자가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을 기분 좋게 본 게 없거든요. 저런 기자가 어디 있을까 싶은 기자들만 나와요. 드물게 기자가 좋게 나오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영화와 소설이 대중정서의 반영이겠지만 기자들이 부당하게 욕먹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습니다. ‘기레기’로 불리는 것도 그렇고. 언론의 잘못이 없다거나, 애초에 구악기자가 없다고는 못 하죠.


-원래 기자가 꿈이었나요.
“군대에 있을 때 기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4학년 때 시험을 쳤는데 최종면접에서 많이 떨어졌습니다. 건설회사에 취직했는데 다섯 달 정도 다니다 사표를 내고 다시 도전했죠. 낮에는 영어교재를 만드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엔 고시원에서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몇 달 뒤에 동아일보에 합격했습니다.” 장강명 소설가는 2002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를 거치며 경찰, 검찰, 국회 등을 출입했다. 2013년 9월 퇴사했다.


-왜 기자를 선택했나요.
“면접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면 ‘역사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고 답했어요. 실제로 그랬고. 부품같은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싶었죠.”


-기자생활은 어땠습니까.
“원 없이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동아일보에서 반기마다 상대평가를 받았는데 성적이 상위권이었어요. 매일 꾸준히 발제하는 것을 목표로 홈런보다 안타를 치는, 출루율 높은 기자로 일했죠. 부장, 차장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기자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웃음)” 그는 기자시절에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관훈언론상, 동아일보대특종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등을 받았다.


-기자생활하면서 후회가 있다면.
“기자 초년병 시절에 건방지게 다녔던 게 후회가 되죠. 초년병 기자들이 대개 목에 힘주며 ‘자뻑’에 빠지는데 남한테도 자뻑을 강요하거든요. 겉멋이 들어서.”

▲장강명 소설가가 자신의 집에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그는 매일 스톱워치로 글 쓰는 시간을 기록하며 산다.(장강명 제공)


“내 글을 쓰고 싶었어요”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됐나.
“5년차 정치부 기자로 일하던 때였어요. 매일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는데, 어느 날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사 쓰는 기계가 됐다고 할까. 정치부 기사가 그렇잖아요. 정치인의 말을 여기저기서 듣고 정리하는 수준이죠. 그전부터 소설가가 꿈이었고 대학 땐 신춘문예에 응모도 했는데, 정치부 말진의 생활이 글쟁이로서 역량을 뭉갠다고 할까. 내 글을 쓰고 싶었어요.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 썼죠.”


그는 주인공이 신문기자인, 신문사가 배경인 소설을 시간 날 때마다 썼다. 탈고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아내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고, 그도 만족하지 못해 어디 내지도 않았다. 3년을 쓴 소설이 사산아가 됐으니 마음은 오죽했을까.


“동기들은 야간대학원을 다니며 학위를 따거나 골프도 치는 데 저는 그 사이에 한 게 없게 됐으니 상심이 컸어요. 그걸 달래기 위해 또 썼죠. 그나마 제일 위로가 되는 게 글쓰기였어요.” 그렇게 3년을 쓴 소설이 2011년 6월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표백’이었다. 당시 그는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2011년 6월15일자)에서 “소설가이면서 기자인 특이한 케이스가 됐다. 연차가 어느 정도 차면 지면을 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매일 발생하는 사건·사고에서 한발 떨어져 탈북자 사회, 아이돌 산업 같은 분야를 몇 달 씩 심층취재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 겸 소설가의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2013년 8월20일) 저녁 ‘빡쳐서’ 출입처이던 국회 기자실을 뛰쳐나와 전화기 전원을 꺼버리고 집에 가버렸다. 황당하고 무책임한 행동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는 무작정 사표를 던질 정도로 용기 있는 인물이 아니라며 한 달은 후회하면서 보냈다고 했다.


그 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설만 썼다. 하루에 200자 원고지로 70매씩 썼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미친듯이 썼다. 2014년 8월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받을 때까지 1년간 수입이 30만원이었다. 생계의 낭떠러지에 배수진을 치고 쓴 소설은 반가운 소식을 속속 전해왔다. 이듬해 ‘댓글부대’로 제주4·3문학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연거푸 받았다. 한번 받기도 어렵다는 문학상을 네번이나 받은 것이다.


-각종 문학상을 석권했는데 비결이 있나.
“행운이죠. 그 즈음 문학상의 경향이 사건이 많이 나오고 서사가 있는 소설을 발굴하고 있었는데, 그런 원고가 오니까 심사위원들이 뽑은 것 같아요.”


-그날 울컥해서 기자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의 장강명은 없을텐데요.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날의 빡침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죠. 용기가 있어 모험한 게 아닙니다. 울컥한 것 때문에 불투명하게 나왔죠. 겁도 났고, 세상은 가파른 낭떠러지였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환경이 안타까워요. 유능한 사람들이 모험을 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표백’에서 젊은인들은 좌절감 속에 자살을 선택하고, ‘한국이 싫어서’에서 주인공 계나는 한국을 떠나 호주로 이민을 갑니다. 젊은 세대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소설의 큰 주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인데, 그걸 고민하는 주인공을 찾다보니 젊은층이었어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대학 졸업에서 직장 3년차 사이에 끼인 청년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지 그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러다보니 청년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의 작품인 ‘열광금지, 에바로드’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표지.

-‘댓글부대’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죠. 작가후기에서 “내가 받은 충격을 그대로 옮기고 싶었다”고 했는데, 어떤 충격이 ‘댓글부대’ 집필로 이어졌나요.
“처음엔 조작이 아닌 줄 알았어요. 민주당이 헛발질한 줄 알았죠. 대선 끝나고 수사결과가 발표됐는데 사실이었어요. 국정원이 댓글조작까지 하는 게 충격이었죠. 그런 세력이 있다면 능히 인터넷 여론조작도 가능하겠다 싶었어요. 국정원뿐만 아니라 폭력적이고 편파적인 방식으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인터넷 여론 환경을 비판하고 싶었죠.”

간판에 집착하는 한국사회
그는 모바일 웹에서 PDF로 신문을 본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동아일보 PDF 지면을 보여주며 읽기 편해서 좋다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 등으로 뉴스가 유통되는 상황에서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손 쓸 도리 없이 하락하고 있다”며 “공급자 위주 매체인 신문은 정파성만 강해지고 있다. 보수신문은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어젠다나 분노를 일으킬 기사로 채워지고 있고, 진보신문도 반대 포지션에서 똑같다. 불행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자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나요.
“지난달에 동아일보 후배들을 만났어요. 얘들이 절망하고 있어서 다독였죠. 틈틈이 책을 쓰며 커리어를 쌓으라고 했어요. 같은 주제로 책을 2~3권만 쓰면 기고나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 셀프 프로모팅을 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 아니겠나.”


-모두가 스타기자가 될 수는 없지 않나요.
“SNS에서 뜨거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해진 기자들이 많죠. 전문성 있는 스타기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죠. 열심히 하는 기자들이 스타기자가 돼서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경력이 무엇을 보장해주지 않지만 지식노동자나 콘텐츠 생산자가 되는 데 프리미엄이 있죠. 기자의 글은 어지간한 파워블로거나 인문학 저자들보다 낫다고 봅니다. 기자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존경하는 소설가는.
“조지 오웰입니다. 저널리스트이면서 소설가죠. ‘카탈로니아 찬가’를 보면 자기편의 한심함에 눈감지 않습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탄광노동자에게 애정이 있으면서 미화하지 않아요. 양면을 모두 보려는 저널리즘적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조지 오웰처럼 당대의 현장을 중요시하는 저널리스트의 자세를 좋아합니다.”


-10월쯤 후속작품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첫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이 이달 말에 나옵니다. 10월엔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장편소설이 출간돼요. 200자 원고지 1700매 분량인데 탈고해서 교정작업을 하고 있어요. 김정은 정권이 붕괴한 뒤 혼란에 빠진 북한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물입니다. 탈북자 박사에게 감수도 받았어요.”


장강명 소설가는 지금도 자신이 기자라고 말한다. 조지 오웰처럼 당대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사람들을 인터뷰한 논픽션을 쓰고 싶다고 했다. 첫 번째로 한국사회 공채제도를 취재 중이다. 한국사회가 왜 간판에 집착하고 서열을 만들게 됐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아나운서와 강사, 취업 컨설턴트를 인터뷰했고 로스쿨 학생 시위 현장도 찾았다. 공채제도의 하나인 문학 공모전에 대한 논픽션 연재를 민음사가 발간한 격월간 잡지 ‘릿터’에 시작했다.


“공채제도는 사람들을 간판에 집착하게 합니다. 서울대냐, 인서울이냐, 수도권이냐, 지방대냐에 따라 사람의 서열이 매겨집니다. 19살 때 본 수능시험의 성적이 필드 능력이랑 연관이 있나 모르겠어요. 대기업 사원증이 있으면 괜찮은 신랑감이고, 중소기업에 가면 루저가 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스티브 잡스나 엘런 머스크가 나올 수 있을까요.”


장강명 기자를 처음 만난 건 2011년 3월 동아일보 노조 사무실에서였다. 한국기자협회 동아일보 지회장 겸 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기자협회보의 주요 취재원이었다. 냉장고에서 꺼내준 음료수를 홀짝거리며 기삿거리가 있나 묻고 언론계 뒷담화를 까던 기억이 있다. 소설가 변신한 장강명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겸손하고 강단졌다. ‘한국이 싫어서’ 주인공 계나는 남자친구 지명에게 두 번째 이별을 통보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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