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뉴스는 그만…'비판의 눈' 가진 기자 많아지길"

JTBC '비정상회담' 알베르토 몬디·다니엘 린데만
정치·사회문제 관심 없고 연예이슈만 집중 의아해
매력적인 한국문화 많지만 홍보부족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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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게 언론과 기자에 대해서 묻는 게 맞는 걸까.” 인터뷰를 하기 전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은 ‘편견’이었다.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JTBC 사옥에서 만난 ‘비정상회담’의 다니엘 린데만과 알베르토 몬디는 한국의 언론 환경을 그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 한국에 적을 둔지도 10여년.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도, 홍보를 못하고 있어 아쉬워요. 자국에 가서 한국에 대한 좋은 뉴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기자협회보가 다소 무겁게 질문한 주제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나가던 이들의 마지말 말에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배어 있었다.



‘기자’하면 어떤 게 떠오르나?


알베르토 몬디=현대 사회의 역사가라고 생각한다. 매일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는 게 기자가 하는 일이다. 기자 중에는 유능한 지식인들이 많고 영향력도 크다. 여론을 형성하는 만큼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니엘 린데만=단순 보도가 아닌 비판적인 프리랜서로, 언론 자유를 위해 목숨 거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테러 현장이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시리아, 터키 등 위험한 지역에 가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독일에서는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는 4만5000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프리랜서다. 그만큼 팩트만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비판적인 태도로 보도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나라 언론과 자국 언론 보도의 차이가 있다면.


알베르토 몬디=이탈리아 뉴스는 분석 기사가 많다. 한국이 팩트 위주로 사건을 보도한다면 이태리는 기자의 개인적인 의견, 견해를 많이 넣는다. 매체마다 진보, 보수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기자의 사상 또한 기사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다.


다니엘 린데만=미국과 영국, 한국 기자들이 팩트저널리즘에 기반한다면, 독일은 기자들의 의견이 대중들에 영향을 끼친다. 대단히 비판적인 면은 독일 언론의 특수성이다. 독일은 특정 이슈가 터지면 기자협회에서 각 언론사 기자들을 초대해 기자회견을 연다.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JTBC 본사 사옥 1층에서 ‘비정상회담’의 다니엘 린데만(왼쪽)과 알베르토 몬디를 만나 ‘한국 언론과 기자’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정부나 기업에 부정적인 기사도 민주주의에 맞게 자유롭게 보도하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치, 사회, 연예 등 각 분야별 보도 비중은 어떠한가.


알베르토 몬디=90년대까지만해도 연예뉴스가 거의 없었다. 이후 베를루스코니가 총리가 되면서 방송국 독점화가 시작됐고 통제도 이뤄졌다. 그때부터 갑자기 9시뉴스에서 연예, 동물, 성과 관련한 자극적인 뉴스가 양산됐다. 정치, 사회 뉴스가 눈에 띄게 줄어들은 것이다. 당시 국회에서 중요한 사안을 처리할 때면 일부러 축구 시합을 편성해 대중의 시선을 딴 곳으로 쏠리게 하는 부작용도 일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되진 못했다. 현재 이태리에서 가장 높은 구독률과 매출을 보이는 매체는 스포츠 전문 신문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정치, 사회에 관심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니엘 린데만=공영방송에서는 연예뉴스를 아예 다루지 않는다. 기껏해야 연예인들이 사건사고를 일으킬 경우에만 사회 기사로 나간다. 대부분 정치, 사회 이슈 위주로 분석 기사를 내보낸다. 연예뉴스는 주로 케이블TV나 가십잡지에서만 다룬다. 아무래도 독일의 TV뉴스 소비층이 대부분 고령층이라 정치, 사회 위주로 보도되는 것 같다.


한국 젊은이들이 정치, 사회 이슈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연예 이슈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 의아하다. 대학생들이 실무적인 스펙 쌓기에만 급급해 인문학, 사회학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언론과 사회가 대학생들이 좀 더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도록 환경을 구축해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치, 경제 권력의 보도 통제에 대해서.


알베르토 몬디=TV 국영방송의 경우 정부 비판 보도가 통제를 당한다. 중요한 뉴스를 맨 뒤로 밀어놓는다든가, 아예 빼버리는 식이다. 반면 신문이나 온라인은 자유롭다. 잘못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비판하는 문화다. 대기업이 없고 중소기업이 많은 나라기 때문에 언론에 영향을 끼치거나, 통제를 하는 기업은 없다. 기자들이 얼마든지 기업을 비판할 수 있다.


다니엘 린데만=독일도 정부나 기업 통제가 없다. 폭스바겐은 큰 대기업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비판 기사를 자유롭게 내보낸다. 신문에 기업광고는 거의 없다.


온라인 뉴스의 무분별한 보도, 어뷰징 뉴스 등으로 오보가 종종 일어난다.


알베르토 몬디=방송에서 실제로 말한 것보다 과장해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에서 13년 전 스페인에서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언론사들이 일제히 ‘알베르토의 고백 “스페인에서 여자 만나”’ 등 제목만 바꿔서 자극적이게 보도된 경우가 있다. 나와 관련된 뉴스를 보고 “어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든 경우가 많다. 글을 잘 써야하는 기자들이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과장 보도를 하는 것을 보면 아쉬움이 든다.


다니엘 린데만=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일이다. 사회자가 재미로 ‘어떤 여자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광화문 오피스 레이디들이 잘 꾸미고 다니는 것 같다. 그거 보고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싶었다”고 농담으로 응수했다. 이후 네이버 뉴스에서는 “다니엘 한국 정착 이유 ‘광화문 오피스걸 때문에’”등의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농담이라도 조심히 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은 해외에서 어떤 나라로 보도되나.


알베르토 몬디=한국은 선진국으로 전세계적으로 잘사는 나라이지만 소프트파워가 부족한 것 같다. 이태리에서는 한국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박찬욱, 김기덕 감독이 한국의 미를 영화에 녹여 보여주는 게 전부다. 그저 전쟁의 나라, 북한 관련 이슈, 개고기, 성형수술 문화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도되는 게 아쉽다. 한국에서는 케이팝이나 드라마만 띄우는데 그게 과연 유일한 방법일지, 그리고 좋은 방법일지 의문이 든다.


다니엘 린데만=독일도 지리적으로 멀어서 (한국에) 큰 관심은 없다. 북한 이슈나 강남스타일 정도만 알려져서 아쉽다.


자국에 가면 한국의 어떤 뉴스를 전하고 싶나.


알베르토 몬디=아름다운 전통문화나 패션, 송도신도시와 같은 미래 도시를 알리고 싶다. 또한 카카오톡 등과 같은 IT 기술, 첨단 의료 기술도 소개하고 싶다. 사실 일본에 비해 한국이 훨씬 문화적으로 소개할 게 많은데도 유럽에서는 일본이 더 잘 알려져 있는 이유가 그만큼 일본의 홍보가 잘 돼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국은 홍보만 잘하면 엄청난 관광 수익이 뒤따를 것이다.


다니엘 린데만=전통문화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는 이색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 독일에서는 외식을 하면 각자 자기 것을 시킨다. 솔직히 비싼 스테이크를 혼자 먹어봤자 맛이 없다. 여럿이서 김치찌개를 나눠먹는 게 정겹고 맛도 좋다. 원칙주의보다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정이 있는 한국 문화도 함께 소개하고 싶다.


한국의 기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알베르토 몬디=팩트 보도를 넘어 분석 보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라는 식의 뉴스는 각 매체에서 비슷하게 쏟아져 나온다. 민주주의에 맞게 자유로운 보도 문화가 정착되고, 그것과 관련해 기자들이 자신의 소신을 맘껏 펼쳤음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는 JTBC 뉴스룸을 신뢰한다. 손석희 앵커가 눈치 안보고 속 시원한 ‘사이다’ 영상을 선보여 좋다. 외국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뉴스가 많은 것 같다.


다니엘 린데만=언론 자유 순위에서 한국은 70위로 알고 있다. 그만큼 아직까지 보도의 자유가 보장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연예 뉴스가 한국에 난무하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삶이 흥미롭고 행복하면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언론사들이 앞장서서 비판적인 뉴스를 만들고, 깨어있는 기자의 눈으로 질 높고 좋은 뉴스를 전달하길 바란다.

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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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혁신해야…기존 방식 고집하면 사라질 것”
JTBC ‘비정상회담’ 타일러 라쉬


▲JTBC ‘비정상회담’ 타일러 라쉬

“신문이나 방송 모두 혁신할 생각 없이 기존 방식을 고집한다면 적자생존 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타일러 라쉬의 말은 간단했지만 명료했다. 현재 언론사가 처한 어려움을 돌파하는 데는 ‘디지털로의 혁신’밖에 길이 없다는 의미다. 미국의 지역신문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고,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등과 같은 유력지들의 광고 수익도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신문이나 방송보다 포털 사이트에서 대부분의 뉴스가 소비되며 국내 언론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우리 언론은 무분별한 어뷰징과 연예스포츠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타일러 라쉬는 “정보성 상품에 대한 온라인 소비 패턴의 변화를 반영한 것 같다”며 “의미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광고업계에서 가치 있는 콘텐츠를 평가하는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회수보다 공유의 횟수 등 질적 가치를 평가하는 다른 기준을 찾아야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의 책임도 빼놓지 않았다. 타일러 라쉬는 “같은 기사를 반복적으로 쓰거나, 팩트를 왜곡시키고 자극적으로 내보내 피해를 입히는 일은 지양돼야 한다”며 “신뢰하고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사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미디어가 더 잘나가는 시대는 따로 없었다”며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길 때 적응을 못해 사라지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진화하는 곳도 있다. 현재의 취재능력, 속도, 공유가능성, 정보전달력, 매체의 다양화, 풍부한 시각적 도구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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