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진위 논란 보도를 지켜보며

박형상 변호사(전 한국기자협회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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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상 변호사

1991년 4월 ‘미인도’ 사건이 있었다. 천경자 화백 주장은 ‘개칠된 머리, 나비와 콧등 처리가 졸렬하며, <장미와 여인>의 짜깁기 위작’이라는 것. 국립현대미술관이 의뢰한 한국화랑협회는 ‘머리에 흰 꽃, 어깨에 나비, 머리칼 까만색 등이 기존작품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며 진품 결론. 미술관측은 ‘과학적 감정 결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압류품 내역, 작가의 ‘표구거래처 표시넘버 126번’을 진품 근거로 내세웠다.


지난해 8월 천경자 화백의 타계를 계기로 진위 논란이 재연됐다. 돌이켜 보면 ‘미인도’ 혼란에는 언론의 태도도 일부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시는 ‘무기명 기사’ 시절이기에 그 책임감이 덜 했을지도 모른다. 대립된 한쪽 당사자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주면서도 ‘확인된 사실’로 단정했다. 보충적 탐사검증이 없었다.


왜 ‘미인도’ 원물을 공개하지 않는가? 왜 굳이 화랑협회에 ‘도록’ 감정을 의뢰하는가? 그림 바깥 사정들에 관한 소문을 말하기 이전에 그림 자체의 미학적 분석은 어떠한가? 과학적 감정을 했다면 구체적 내역과 근거를 제시하라는 추가 요청이 없었다. 또한 2~3개 취재원을 상대하는 교차확인도 없었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그 일부 행태가 답습되고 있는 점이다. 2016년에도 ‘미인도’ 진품 주장자들에 대한 추가 질문이 여전히 미흡하다. 당신의 눈으로 직접 ‘미인도’를 살펴본 일이 있는가? ‘미인도’ 자체에 대한 미학적 견해는 어떠한가? 이른바 ‘김재규 상납 보관품’설은 풍문 말고 직접 근거가 있는가? ‘동산방 표구틀 넘버 126번 표시’는 직접 확인한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등은 캐묻지 않고 있다.


필자의 경우 운 좋게도 ‘미인도’ 사건 자료를 여러 기회에 확보할 수 있었다. 1999년에 ‘미인도 위작’을 주장했던 ‘권모’를 별개 위조사건에서 변론했다.(‘권모’의 ‘미인도 위작’ 주장을 필자는 그대로 다 믿지 않는다.) 2002년에 KBS의 사건 당시 취재영상테이프를 입수했는데, ‘동산방 화상’이 ‘126번 표시’에 대해 해명하고 있었다. 2008년에 ‘미인도’ 사건에 관한 국립미술관의 정보공개답변을 얻어냈다. 1980년에 작성된 ‘물품무상관리전환’ 공문서에는 ‘천경자 미인도, 1점 30만원’ 뿐이었다. ‘그림크기, 제작연도, 그림재질’ 표시도 없고, ‘김재규 압류품’ 기재도 없었다.


모두 합쳐 보니 그간에 주장되고 배포된 보도 자료는 ‘사실’과 온통 달랐다. 당시 국립미술관에는 감정 인력과 장비가 없었다. 유의미한 ‘안료감정’의 전제조건이 충족된 상황도 아니었다. 국가수사, 연구기관들은 ‘감정불능’을 회신했었다. 지난 25년 세월 속에 얻은 ‘미인도’ 교훈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취재보도는 ‘사실’과 ‘주장(소문)’의 분리에서 시작되고, ‘검증 확인’에서 마감되어야 한다.


특히 ‘보도자료’와 ‘알려졌다’, ‘전문가 전언’에 의존하는 건 무책임하다. ‘전문가에 대한 기계적 맹종, 형식적 중립성’만으로는 ‘사실’에 온전히 이를 수 없다. 또한 기자는 그 소신을 넘어서서 ‘어떤 이해관계 집단의 대리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 1991년의 문화부 출입기자들은 이제 증언 한마디 정도를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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