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포기하지 않고 이뤘습니다"

지국장에서 기자로 변신 권광순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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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광순 조선일보 기자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안동 작은 산골마을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소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말로만 듣던 흑백텔레비전을 처음 접했다. 낡은 브라운관을 통해 본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클락을 보면서 산골 소년은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은 그 꿈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대학 진학 대신 취업 일선에서 뛸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를 가로막은 것.


산골 청년은 꿈을 포기하는 대신 꿈을 가슴에 품었다.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겠노라고. 그리고 그 꿈은 40대가 돼서야 비로소 이뤄졌다.


20살 조선일보 최연소 지국장을 하다 마흔 살에 경북매일 수습기자로 변신한 뒤 지난 3월 조선일보 경북주재기자로 합격한 권광순 기자의 도전기는 남다르다.


“형의 권유로 신문지국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우연찮은 기회에 직접 지국까지 운영하게 됐죠. 밤낮 없이 판매현장을 누빈 결과 초기 발송 부수보다 5배 이상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죠.”


16년 간 지국운영을 하면서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싹싹한 성격 덕에 남부럽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언제나 허전했다. 소년 시절부터 품었던 꿈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에 쫓기는 지국장 생활을 하면서도 손에서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요 신문에 난 기사를 분야별로 스크랩하고 기사체를 익히기 위해 똑같은 기사를 여러 번 필사하는 수고도 거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90년대 중반 우연찮게 접한 조선일보 오태진 기자(현 수석논설위원)의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강화도 장곶횟집에서 저녁 낙조를 보면서 맛본 밴댕이 회’라는 기사는 충격 자체였다. “‘밴댕이 소갈머리’라는 말만 들어봤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산골청년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한걸음에 안동에서 강화도까지 갔죠. 언젠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기사를 써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형이 운영하는 회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대학진학을 결심했고 2009년 대학 졸업과 함께 나이 마흔에 경북매일 수습기자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이제 막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의 여자 동기들이랑 똑같이 소방서와 경찰서 등을 돌았죠. 당시 택시 기사나 시장 상인들을 볼 때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는 부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 돌린 명함을 통해 연락 온 제보로 특종을 많이 했습니다. 기자는 발로 뛰어야 한다는 진리를 또 한 번 느꼈죠.”


권 기자는 조선일보 입사 덕에 기자 생활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아내에게 지역신문 기자가 된다고 했을 때 약속한 유효기간은 7년이었다. 올 9월20일이면 아내와 약속한 날이다.


“기왕에 기자직을 택한 거라면 죽을 만큼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은 살아생전 회사를 갈 때마다 소풍가는 기분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취재하러 갈 때마다 수학여행을 가는 기분입니다. 고난도 스스로 즐길 줄 알면 즐거움이 되죠.”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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