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늘어나는 언론사 안 '장그래'

싼값에 부리고 손쉽게 해고
퇴직금도, 4대 보험도 없어
"고용 안정·적정 임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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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취재, 보도하는 프로그램에서조차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형편입니다. 내부적인 시스템부터 제대로 뜯어고친 후 대의명분을 외쳤으면 좋겠어요.”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작가로 근무하는 A씨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언론사의 행태가 부조리할 뿐더러 수많은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 회사에서 2014년부터 근무했다. 파견업체를 거치지 않은 직접고용이지만 별도의 계약 기간이 없는 그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과 같은 구두계약을 통해 채용된다고 했다. 이들의 계약이 끝나는 시점은 암묵적으로 프로그램의 종영이다. “제작비를 절감하라는 상부의 지침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들이 싼 값에 부려지는 막내작가와 파견직 FD입니다. 그들의 수십 배 연봉을 받는 정규직 PD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죠.”


A씨가 받는 월급은 대략 150만원 수준. 하루에 5시간 정도를 일하니 최저임금은 보장받는다고 볼 수 있지만 퇴직금과 4대 보험은 적용받지 못한다. A씨는 “이 외에 식사비, 교통비, 업무용 통화요금도 사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면서 “막차가 끊길 때까지 일하느라 월급의 상당 부분을 택시비로 날리는 작가들도 많다. 가장 형편이 열악한 외주업체 막내작가들은 아직도 100만원이 채 안 되는 고료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 한 지상파 방송사 자회사의 업무 보조 직군에서 근무하는 B씨는 이 회사에서 근무하기 전까지 노동문제 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는 노동 현실이 얼마나 열악하고 심각한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현장에 나가면 100명 중 70~80명은 외주업체 등 간접고용 노동자나 계약직 노동자더라고요. 대부분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면서 월급 200만원을 받을까 말까 한 사람들이죠.”


B씨의 사정 역시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3년 파견계약직으로 취직한 그는 2년 동안 근무하다 지난해 직접고용으로 전환됐다. 물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이다. 그는 이 직군에는 정규직이 거의 없다면서 직접고용마저도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간접고용 신분일 때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밤 샐 때도 많았고 드라마 촬영 때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죠. 저에게 그런 노동이 강요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경력 4년차임에도 겨우 2000만원 중반의 연봉을 받는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정규직과도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다. “미생을 보면 명절 선물조차 다르게 받잖아요. 여기도 그래요. 정규직에게 스팸을 주면 비정규직에겐 식용유를 줍니다.”


▲한 지상파 방송사 자회사가 내건 파견계약직 공고.


언론사의 비정규직 고용 문제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공시한 2016 고용형태 자료를 보면 공시된 19개 언론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평균 17.9%다. 이 중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상위 5개 언론사의 평균은 30.1%로 10명 중 3명꼴로 비정규직 노동자다. 처음 공시된 2014년과 비교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수치다.


아르바이트, 단기계약직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와 용역회사나 외주업체 소속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등 언론사에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존재한다. 방송작가, FD, AD, 미화, 경비 등 다수의 직군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PD와 기자조차 비정규직인 경우도 있다. 2015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비정규직 기자는 2014년 일간 신문에서 823명이었고 전체 신문 산업으로 확대하면 5679명으로 전년 대비 25.1% 증가했다.


한겨레가 지난달 초 발표한 ‘비정규직 특위 10개월’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이 인상되는 것이다. 한겨레에서 단기계약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C씨는 “한겨레는 타 언론사에 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심하지 않다”면서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느끼는 계약기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다. 아르바이트생들의 시간당 임금도 생활임금 수준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와 B씨가 가장 바라는 것도 고용 안정성과 적정한 임금이다. A씨는 “명확한 근로 조건이 명시된 표준계약서가 있어야 하고 4대 보험이 보장돼야 한다”면서 “기본적인 퇴직금이나 실업급여와 같은 당장의 생계유지비용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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