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 요리 레시피 서비스를 중단하는 이유

[글로벌 리포트 | 영국]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BBC의 인기 있는 온라인 콘텐츠 중 하나인 요리 레시피 서비스가 중단된다. 지난달 17일 BBC가 ‘웹사이트의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요리 프로그램과 연계된 요리 레시피 코너를 없앤다는 소식이 일간지를 통해 알려졌다. 요리 레시피 정도야 사라져도 수용자들이 큰 변화를 느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를 기점으로 뉴스와 같은 다른 핵심 콘텐츠의 온라인 서비스 역시 그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BBC는 ‘더 그레이트 브리티쉬 베이크 오프(The Great British Bake Off)’, ‘마스터 쉐프(Master Chef)’ 등 연간 시청률 조사 때마다 상위권을 차지해 온 요리 프로그램들을 세계 각국에 수출하는 한편 그와 연계된 다양한 상업활동을 성공적으로 펼쳐왔다. 영국 수용자뿐 아니라 전세계 수용자들의 접근이 가능한 요리 레시피 코너에는 유명 쉐프들의 레시피 1만1000여개가 무료로 소개돼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이들 레시피들 모두가 공중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BBC는 ‘백서’ 속 BBC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비평을 고려, “보다 집중적이고 독창적인 서비스를 위해 요리 레시피를 비롯한 온라인 서비스의 규모를 향후 1년 동안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등장하는 ‘독창적’이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한다.


지난달 영국 정부가 왕실칙허장의 내년도 갱신에 앞서 발표한 ‘백서’는 현재의 수신료 제도를 향후 11년 동안 유지한다고 밝혀 그동안 보수당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온 BBC를 안도하게 했다. 하지만 ‘백서’의 다른 조항들에는 BBC의 전체 거버넌스 시스템에 대한 개혁안뿐 아니라 BBC의 방송 및 온라인 콘텐츠 제작에 대한 까다로운 제안들이 담겨져 있어 그에 대한 논란이 사내외로 증폭되는 상황이다.


특히 BBC의 스태프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기존 칙허장에는 없었던 ‘독창성’에 대한 언급이다. 이번 ‘백서’는 공적 서비스인 BBC에 새롭게 부여되는 임무로 “독창적인 미디어 콘텐츠와 서비스로써 수용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용자들을 교육시키며, 수용자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맥락상 여기서의 ‘독창적’이라는 단어에는 다른 상업적 방송과 신문산업과는 차별화되는 BBC만의 방송 및 온라인 서비스를 제시하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쉽게 말해, 이들과 비슷한 서비스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백서’의 초안격인 ‘녹서’에 등장한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BBC는 독창적이기 위해) “덜 대중적이고 좀더 사라지는 방향으로”(less popular and much-diminish), “나아가야 한다”(thrive).


한편으로 보수당 내각은 지난 일 년 동안 BBC의 경영진과 칙허장 관련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BBC가 온라인 뉴스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며 그것이 신문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BBC의 온라인 서비스 규모를 축소시키라 주문해왔다. 지난해 7월 조지 오스본 내무부 장관은 “BBC 웹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콘텐츠가 국가 신문들을 밀어내고 있다”고 주장하며 BBC가 ‘황제적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장관이 그 구체적인 콘텐츠의 예시로 언급한 것이 다름 아닌 ‘요리 레시피와 (신문과 비슷한 형태의) 피처 기사’였다.


‘백서’가 공개된 후, BBC가 오스본 장관이 언급했던 요리 레시피 코너부터 없애기로 결정한 것을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백서’ 발간의 후폭풍이 시작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BBC는 요리 레시피에 이어 뉴스 서비스의 개편도 준비하고 있다. 비용절감을 위해 현재 영국 국민과 해외 수용자 각각을 대상으로 하는 ‘BBC 뉴스’ 채널과 ‘BBC 월드’ 뉴스를 통합할 계획을 사내에서 논의 중이다. 제임스 하딩 뉴스본부장은 이와 관련, 사내 회의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는 후문이다.


과연 BBC 경영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예산 감축이라는 실리적 문제뿐인 걸까. 수신료제 존속 및 수신료 인상안을 대가로 거버넌스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에까지 정부의 입장이 반영되기 시작됐다는 것에 BBC의 독립성을 지지해 온 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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