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로 만드는 책 '올재 클래식'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고전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당신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기부로 만드는 책, ‘올재 클래식’. 슬로건은 ‘Share the Wisdom, Change The World’. 우리 말로 풀면 ‘지혜를 나눠, 세상을 바꾸자’ 정도 될까.


조선일보 Books 지면에 올재 클래식 이야기를 꺼내면서, “1등만 기억하는, 시작만 기억하는” 에피소드를 꺼낸 적이 있다.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최고만 기억하거나, 첫 출발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비영리 사단법인 올재(이사장 홍정욱)가 펴내는 동서양 고전 시리즈 ‘올재 클래식’은 2012년 1월 ‘한글 논어’로 시작했다. 한 권에 홑 2900원. “돈 없어 고전 못 읽는다는 말은 나오지 말게 하자”는 취지로 홍정욱 전 국회의원이 깃발을 들었고, SK·삼성·현대차 등이 제작비를 지원했다.


대기업만 참여한 것은 아니다. 각 권의 표지 제호는 캘리그래퍼 강병인씨의 재능 기부고, 한국 고전번역원은 ‘고운집’ ‘우서’ ‘계원필경집’ 등의 고전 텍스트를 무상으로 제공했으며, ‘한글 논어’ ‘한글 맹자’ ‘한글 중용/대학’ 등의 저작권자인 이원태 금호 아시아나 부회장도 인세를 받지 않았고,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역시 무료 편집으로 봉사했다는 게 올재 측 이야기다.


이번에 나온 4권의 책은 이수광의 ‘지봉유설1’ ‘지봉유설2’,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비글호 항해기’. 4년여 동안 모두 62종 74권을 펴냈다. 동양고전 20종(27권), 서양고전 27종(28권), 한국고전 15종(전 19권)을 분기마다 냈다. 종당 5000부 발행. 4000부는 2900원에 판매하고, 나머지 1000부는 벽지 학교나 도서관, 교정기관, 군 부대 등에 무료로 기부한다는 약속도 지켜왔다고 한다.


놀라운 건 매진 속도다. 젊은이들에게 고전을 알리자는 취지로 인터넷 서점에서 60% 정도를 판매하는데, 이번 에 나온 4권의 인터넷 판매분 1만부는 발매 시작 2시간50분만에 매진됐다고 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하는 나머지 40%도 1~2주면 품절이란다.


2900원이라는 파격적 가격이니만큼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인터넷 시대에도 그 옛날 고전을 탐독하는 독자들이 이렇게 많고 열심이라는 소식이 반가웠다.


올재 클래식에 쏟아지는 가장 큰 불만은 번역이다. 물론 ‘교수 신문’이 최고의 번역으로 꼽은 연변대학 번역팀의 ‘수호지’ 등 자부심 넘치는 사례도 있지만, 예전의 고투(古套)나 오역이 수정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비판이다. 물론 이 대목은 2900원이라는 가격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수익성을 이유로 더 이상 중쇄를 찍을 수 없는 옛 인문 고전 번역서를 ‘올재 클래식’의 이름으로 복원한다는 것.


사실 인쇄비도 안되는 2900원 책값으로 모든 책에 최고 수준을 주문하는 건 무리한 일일 것이다.
사단법인 올재의 김지훈 팀장은 “좋은 번역으로 평가받았던 책 중에 의외로 절판된 책이 상당히 많다”면서 “일차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양질의 고전 번역서를 되살리는 작업이 먼저”라고 했다. 또 “향후에는 새 번역서 비중을 늘릴 것”이라면서 “편집 회의 결과 번역본에 대한 전문적인 감수가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분야 석학을 찾아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금도 적지 않은 기관, 단체가 이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지만 좀 더 많은 개인들도 ‘Share the Wisdom, Change The World’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올재의 올해 목표는 100종 돌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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