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4기' 국회 입성 이용호 "이제는 열매 맺을 것"

언론인 출신 초선 국회의원 연속 인터뷰 ⑤이용호 국민의당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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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간 경향신문 기자를 지낸 이용호 국민의당(전북 남원·임실·순창) 당선자는 4번째 도전 끝에 국회에 입성했다. 첫 출마가 12년 전인 2004년 17대 총선이다. 그는 2010년 남원시장 선거에 출마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다. 3차례나 시련을 겪어서일까. 그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말을 빌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당선자는 지난 19일 여의도 국회 본관 의원식당에서 가진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정치에 입문했다"고 말했다.


-4번째 출마였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뛰었나. 
“JP가 ‘정치는 허업’이라고 했는데 10여년을 해보니까 진짜로 ‘허업’이더라.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그런데 정치는 10년 한다고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 업종이다. 그래서 허업이다. 이번 총선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출마했다.”


-3번이나 낙선했으면 포기할 만도 할 것 같다.
“탄핵 바람에 졌으니 다시 해보라는 요구가 컸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재기를 하고 싶었다.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고 국회 사무처 홍보기획관으로 일하면서 매주 주말이면 남원을 찾았다.” 그는 2004년 첫 출마 때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하지만 민주당 공천 사흘 만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에 휩쓸려 완패했다.


-당선자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누구나 죽기 전에 세상에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나도 정치를 하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내 삶에 흔적을 남기는 데 정치도 괜찮겠다 싶어 선택했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킨 원인은.
“호남을 대변하지 못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남민심의 심판이다. ‘선거 때만 와서 표 달라 하고, 선거가 끝나면 올라가버리고 무시한다’는 정서가 있다. 실사구시적인 접근을 할 때가 됐다는 호남민심이 국민의당을 선택했다고 본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호남의석 28석 중 23석을 차지했다.


-안철수 대표와 인연이 있었나.
“2012년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에 국민소통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때 본 인연이 있을 뿐, 안 대표에게 영입 제안을 받은 건 아니다. 자력으로 들어왔다.”


-안철수 대표에 대한 평가는.
“안 대표는 요즘에 정치인으로서 트레이닝이 돼 가는 것 같다. 야권후보 단일화 제안을 거절하면서 자기의 길을 갔고, 그것이 성공했다. 일단 정치인으로서 변신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2015년 1월 전북 남원시 대산면에 있는 한 마을 빨래터에서 찍은 사진. 이용호 페이스북


-공대를 졸업했는데 기자가 됐다. 원래 기자가 꿈이었나.
“촌에서 상경해 대학을 다니면서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눈을 떴다. 당시도 금수저가 있고, 흙수저가 있었다. 사회의식을 키워가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직업이 기자라고 생각했다.”


-경향신문 입사 때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군에서 휴가 나왔다가 동대문야구장에 고교야구를 보러갔다. 깔고 앉은 신문지에서 경향신문 수습기자 모집공고를 봤다. 서류를 내러갔는데 현역군인은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한 10미터쯤 걸어 나왔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류를 내봐라. 그런데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을 하더라. 그래서 시험을 봤고,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정치부 차장을 하다가 총리실 공보비서관으로 이직했는데.
“신민주공화당을 오래 출입하면서 JP와 인연을 맺었다. 결혼식 주례도 JP가 섰다. 97년 DJP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총리실로 오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기자생활하면서 후회되는 기사가 있다면.
“사건기자로 노량진경찰서를 출입할 때였다. 어느 날 새벽에 경찰서 쓰레기통을 뒤지다 사건 하나를 찾아냈다. 노량진수산시장 도매인 간 간통사건이었다. 취재에 들어갔는데 형사가 내게 ‘이것 나가면 집안이 쑥대밭이 된다’며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쓰지 말라고 하면 더 쓸 때였다. 결국 기사가 나갔고 집안이 난리가 났다. 나중에 관련자의 딸이 고3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흥미 위주의 사건인데 기사 욕심에 한 가정에 피해를 줬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사소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진짜 정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를 보는 눈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노량진경찰서의 파란 쓰레기통에 버려진 조서들, 노량진수산시장의 비릿한 냄새가 잊히지가 않는다.”


-방송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했는데.
“정치는 오염된 폐수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과 다름없다. 몸에서 냄새가 나고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저 사람은 정치한 사람이다’라는 낙인이 찍히면 다른 일을 하기가 힘들다. 2004년에 낙선했을 때 내 나이가 마흔 다섯이었다. 다시 언론계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러다 TV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게 됐다.” 


-국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우리나라는 수도권 중심의 국토운영이 지속돼 지역불균형이 심화됐다. 수도권과 농촌의 격차를 1센티미터라도 줄일 수 있는 법안을 만들고 실효성 있는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마련하고 싶다.”


-기자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요즘 기자들은 체력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러다보니 자기 계발에 소홀하다. 공부를 해서 전문지식을 쌓아야 한다. 책도 쓰라고 권하고 싶다. 가급적이면 취향이 맞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래야 기자생활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노후가 불안하지 않다.”


‘정치는 허업’이라고 하면서 왜 정치를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카톡으로 물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실패만 했기 때문에 허업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낙선했으면 여전히 허업이었을 것이다. 당선이 됐으니 허업을 열매가 있는 실업으로 만들겠다. 정치가 모든 것의 출발이니까.”

▲4·13 국회의원 총선거 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31일 이용호 국민의당 후보가 남원시청 앞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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