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옥시 피해자를 두번 울리나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정치권은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추진키로 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2000년대 초 처음 제기됐고, 2011년에는 사망자 발생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제품수거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너무 늦은 일이다.


더욱이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비자의 손해배상소송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배상의 근거가 되는 피해액 산정도 쉽지 않은 게 일반적이다. 결정적인 것은 이번 사건처럼 검찰이 사실상 수사를 장기간 포기해온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해도 신속히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다. 집단소송제는 기업 등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피해자 일부가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별도 소송없이 함께 피해를 구제받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해자의 불법행위가 고의적·악의적·반사회적일 경우 피해자의 실제 손해보다 훨씬 큰 규모로 배상토록 하는 제도다. 이들 제도는 일반적으로 법위반자(기업)에 비해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들(소비자)의 대항력을 키워줌으로써 배상을 보다 쉽게 받도록 하고, 나아가 동일한 위법행위가 반복되는 것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이어서 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 시행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집단소송제의 경우 증권분야만 제한적으로 도입됐다. 그나마 소송 남발 우려를 이유로 소송조건이 까다로워,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최근 몇년 사이 하도급법, 노동관련법 등에 일부 도입됐는데, 사실상 적용사례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감안해 2012년 대선 때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약했다. 하지만 집권한 뒤에는 기업활동 위축 우려를 내세워 ‘없던 일’로 했다. 소비자보호 분야의 경우 야당이 진작부터 두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으나, 정부여당은 역시 ‘쇠귀에 경 읽기’로 일관했다.


미국 법원은 최근 세계적 기업인 존슨앤존슨에게 60대 여성에 5500만달러(실제 배상 500만달러와 징벌적 배상 50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여성은 40년간 이 회사가 만든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했는데, 제품에 함유된 발암물질 때문에 난소암에 걸렸다고 소송을 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눈이 멀었더라도 위자료 기본액수가 5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옥시사건 같은 피해자들이 두 번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막으려면 청문회에 불러 호통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소비자와 공정거래 분야라도 우선적으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두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소송요건을 완화하고, 입증책임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덧붙여 법원 명령으로 가해자가 갖고 있는 증거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최대 3배에서 10배로 대폭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의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은 그동안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마치 멀쩡한 기업도 망하게 한다는 그릇된 주장을 펴왔다. 또 사법부도 ‘실제 손실 범위 내 보상’이라는 기존 관행만을 앞세워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소극적이다. 이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옥시의 공범’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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