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과 후지모토, 로드맨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전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데니스 로드맨(55)과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藤本建二·62).
둘 다 코믹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범상치 않은 용모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틈날 때마다 평양으로 불러들여 극진히 환대하는 외국인 ‘절친’들이다.


금방이라도 인기만화 ‘슬램덩크’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용모의 로드맨은 미국 프로농구(NBA) 마니아인 김정은에겐 어린시절의 우상 중의 우상이다. 두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후지모토는 금방이라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몰고 거리를 질주할 것 같은 폭주족 모습이다. 그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일하다가 뜻하지 않게 8살짜리 김정은의 놀이 상대를 맡게 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정은에게 이들의 존재는 단순히 우상이나 친구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몇 년 전부터 서방세계에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고립된 32살 청년 지도자 김정은이 자신의 유년시절 추억의 인물들을 소환해 그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서방매체에 슬쩍 흘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후지모토는 김정은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는 김정은이 최근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전쟁을 할 생각은 없다. 외교 쪽 인간들이 미국에 접근하면 (미국 측이) 무리한 난제를 들이대는 바람에 울컥해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고 말했다고 지난달 26일 일본 언론에 전했다. 그와 김정은의 면담은 지난달 12일 밤 평양 시내의 연회시설에서 식사를 겸해 3시간가량 이뤄졌으며,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과 최룡해 당 비서도 참석했다고 한다.


로드맨은 지금까지 네 차례나 북한을 다녀왔으며, 김정은·이설주 부부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가장 처음 서방 매체에 알린 바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이 일상복을 입는 쿨 가이로 음악과 스포츠 등을 즐긴다”고 말했고, 만찬이 끝난 뒤 김정은 부부와 함께 마이클 잭슨과 비지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까지 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로드맨은 특히 “김정은은 사담 후세인같은 타입은 아니다”라며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후지모토와 로드맨도 자신들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다. 후지모토는 김정은과의 면담 내용을 전하면서 “내게 일본 정부와의 중간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드맨은 자칭 ‘농구외교’를 통해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야 공식 외교 채널이 꽉 막힌 상황에서 이들에게라도 의지하고 싶겠지만 기대와 달리 가십으로만 취급될 뿐 외교적 효과는 거의 없어 보인다.


북한은 오는 6일 무려 36년 만에 제7차 노동당 대회를 개최한다. 김정은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새로운 ‘김정은 시대’의 도래를 선언한다. 자신이 북한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겠다고 대내외적으로 큰 소리를 쳐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왠지 점점 더 어린 시절로 퇴행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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