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기업문화 혁신, 언론은 예외인가?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대기업들이 앞다퉈 후진적 조직문화 혁신에 나서고 있다. 재계 1위 삼성은 최근 글로벌 기업에 걸맞게 의식과 근로문화를 탈바꿈하기 위한 ‘스타트업 컬처혁신’을 발표했다.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 생산성 제고 등 3대 혁신전략을 내놓았다. 열린 소통과 지속적 혁신이 가능한 조직문화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재계 4위 LG도 1월부터 일종의 온라인 제안제도인 ‘우리 틉시다’를 시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현행 5단계 직급체계도 역할 중심으로 바꿀 계획이다.


대기업들의 조직문화 혁신 배경에는 현행 상명하복 위주의 폐쇄적 조직문화로는 기업 발전은커녕 생존도 어렵다는 절박한 인식이 깔려있다. 앞선 선진국을 신속하게 쫓아가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시대에는 위의 명령을 일사분란하게 실행하는 조직이 경쟁력이 있었다. 또 야근과 주말특근을 마다않는 임직원들의 헌신성이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롭게 열고, 맨 앞에서 시장을 이끌어야 하는 ‘선도자’(First Mover) 시대에 필요한 창의와 혁신은 수평적이고 자율적이 조직문화가 뿌리내리지 않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들의 후진적 조직문화의 실태는 최근 대한상의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상습적 야근과 비효율적 회의, 일방적 지시와 복종, 비합리적 평가시스템 등으로 특징되는 한국 기업들의 조직 건강도는 글로벌 기업에 견줘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이를 두고 “현재의 후진적이고 구시대적인 기업문화에 젖어든 병든 조직으로는 저성장 뉴노멀시대의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일갈했다. 그동안 한국 대기업들은 기업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세계경제 부진, 국민들의 반기업정서, 정부의 지나친 규제 등 주로 ‘남 탓’을 해왔다. 기업들이 경쟁력 약화요인을 ‘내 탓’으로 돌리며, 개선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중요한 변화다.


▲삼성전자는 지난 24일 경기도 수원 디지털시티에 있는 디지털연구소(R4)에서 CE부문 윤부근 대표, IM부문 신종균 대표, 경영지원실 이상훈 사장을 비롯해 주요 사업부장, 임직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가졌다. (뉴시스)

하지만 놓쳐서는 안되는 게 있다. 후진적 조직문화가 기업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당장 기업들의 조직문화 혁신을 보도하는 언론계의 현실은 어떤가? 상습적 야근, 비효율적 회의, 비합리적 평가와 보상 시스템은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언론은 대기업들이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교육 프로그램마저 전무한 실정이다.


“오후 6시 퇴근시간이 되면 대부분 저녁 약속이 있습니다. 9~10시 전후로 1차 저녁식사를 하고 2차 술자리까지 이어지면, 귀가시간은 밤 12시를 훌쩍 넘습니다. 늦어도 다음날 아침 6시까지는 회사로 출근해야 합니다. 잠은 3~4시간 간신히 눈을 붙이는 정도입니다. 솔직히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죠.”재벌 대기업 홍보실에서 일하는 40대 직장인의 고백이다. 그리고 이 사람과 술잔을 늦은 시간까지 맞대는 상대는 바로 ‘언론인들’이다.


한국 언론의 보다 큰 문제는 이런 후진적 조직문화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두들 신문, 방송의 위기를 말한다. 인터넷과 SNS 등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신문, 방송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진다고 하소연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위기는 이런 외부 요인보다는, 후진적 조직문화를 혁신하지 못하는 내부역량 부족 탓이 더욱 크지 않을까? 언론은 흔히 사회의 거울로 불린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너무 낡아서 남의 얼굴은커녕 제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못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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