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불통에 기자 사회 익명앱 바람…게시판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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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게시판 실명제 전환 이후 언론사 내 언로가 막힌 가운데 폐쇄형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블라인드’앱이 최근 기자 사회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A사 기자는 모바일 익명앱 ‘블라인드’에 어떤 글들이 올라왔는지 한 번씩 들여다본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언론인을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위안을 삼기 위해서다.


동종 업계에 있거나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불만이나 애환을 토로할 수 있는 폐쇄형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블라인드’ 앱이 최근 기자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블라인드앱 개발사인 팀블라인드에 따르면 작년 11월24일 오픈한 ‘언론사 라운지’에는 현재 37개 언론사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직장인들을 위한 ‘모바일 대나무 숲(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대나무 숲에 외쳤던 행위를 빗댄 것)’으로 일컬어진 블라인드는 그동안 대기업 위주였지만 언론사 등으로 이용자들이 확산되고 있다. 단순히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풍문’이 아닌 현직에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연봉, 수당 등 민감한 정보뿐 아니라 회사 정책에 대한 불만 등이 오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라인드 앱을 이용하기 위해선 회사 이메일 계정을 가지고 인증을 받아야 한다. 소속사만큼은 익명 뒤에 숨기지 않고 글을 올린다는 점이 다른 게시판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블라인드 회원으로 가입하면 언론사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지만 개별 언론사 페이지는 동일 언론사 회원 수가 30명을 넘길 경우에만 개설되고 이용도 제한적이다.


기자들이 폐쇄형 SNS를 통해 자신들의 고민과 불만 등을 분출하는 이유는 무얼까. 실명제로 전환된 사내 게시판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사내 여론을 소통하기 위한 ‘언로’라기보다는 감시나 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MBC 이용주 기자는 2013년 회사 보도국 게시판에 MBC 경영진을 비판한 글을 올렸다가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사내 게시판이라도 ‘인신 공격성 글’이나 ‘잘못된 정보를 올린 글’ 등은 자제되어야 하지만 건전한 비판 여론마저 옥죄여선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 속에서 기자 개개인의 고민을 ‘곁가지’로 여겨는 조직 분위기 역시 기자들을 음지로 내모는 원인이다. 여기에 상명하달식 조직문화 역시 언로의 ‘동맥경화’를 부채질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반면 누적된 ‘신구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거엔 술자리 등 선후배 간 만남의 자리를 통해 내부 갈등이나 불만이 표출되고 치유됐지만 과도한 업무 탓에 이런 문화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문제는 회사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여론마저 위축돼, 블라인드앱과 같이 ‘음지’로 숨어버린다는 점이다.

블라인드 앱에 가입한 한 기자는 “경쟁 논리만 앞세우다보니 허심탄회한 토론문화가 부족하다”면서 “무슨 말만 해도 해사행위로 비춰지는데 누가 사내 게시판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겠냐”고 말했다.


더구나 건전한 비판을 업(業)으로 삼는 기자들마저 내부 분위기 때문에 이런 앱에서 소통한다는 것 자체가 우울한 언론 자화상을 반영한 것이란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한 ‘2013 한국의 언론인’에 따르면 소속 언론사에 대한 만족도(5점 만점)는 2007년 3.48점, 2009년 3.40점, 2013년 3.29점으로 2007년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성신여대 김정섭 미디어영상연기학과 교수는 “사내 언로가 막히면 기본적으로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며 “업무강도가 센 기자들에게 소통에 대한 만족도 등을 높여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직·전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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