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어요(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17년 뒤다. 정치에서 TV의 전성시대가 이어졌다. 2016년 대선은 TV 시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 현상을 있게 한 일등공신은 TV다. 그는 리얼리티쇼를 10년간 진행하며 왕좌와 같은 자리에서 “너는 해고됐어(You’re fired)”라는 말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시청자들은 해고되는 사람들보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트럼프에 감정이입했다. ‘너는 해고됐어’라는 말은 2016년 선거 유세장에서 트럼프가 그의 증오발언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삿대질하며 “쟤들 당장 끌어내(Get’em out)”를 외치는 것으로 대체됐다. 좌절과 분노에 찬 군중은 그런 모습에 또다시 열광한다. 시위대를 향해 “X 같은 아우슈비츠로 꺼져버려”를 외치기도 한다. 정규방송의 금기어를 남발하는 트럼프를 보는 이들의 심리는 ‘욕쟁이 할머니’에게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비슷하다. 다만 그것은 카타르시스에 그치지 않고 약자에 대한 혐오로 퇴행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군중들은 자신의 경제적 곤경이 이민자 유입이나 동맹국·교역상대국에 대한 미국의 관대한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트럼프가 TV에서 보여준 것 같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트럼프는 수시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서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여론 주도에도 능하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이 쌍방향 소통에 얼마나 익숙한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성공은 소셜미디어 시대의 시작보다는 텔레비전 시대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어떤 후보의 과거 발언이 금방 공개되고 거짓말이 실시간으로 탄로난다. 유권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자신들의 요구를 캠페인에 반영하고 저비용의 풀뿌리 선거운동도 한다. 그런 소셜미디어 정치에 가장 잘 올라탄 후보는 샌더스이다. 그가 TV와 신문으로 대표되는 주류 매체의 의도적 무시와 폄하 속에 선전하고 있는 것은 소셜미디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CBS·트위터 주관 토론에서 힐러리가 월가의 돈을 수백만 달러 기부 받은 것을 방어하며 9·11 사건 때 뉴욕주 상원의원으로서 맨해튼 재건을 위해 월가의 협조도 얻어야 했다고 말했을 때였다. 샌더스가 이 말을 반박할 필요도 없었다. 잠시 후 방송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올라온 트위터 사용자들의 글이 비쳤다. “월가의 수백만 달러 기부금을 받은 것을 정당화하려고 9·11을 끌어들이는 후보를 여태껏 본 적이 없다.” 힐러리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트위터의 선거뉴스팀장 애덤 샤프는 “지난 50년간 대선 TV토론 역사에서 시청자들이 화면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넘어 토론무대에까지 목소리를 반영한 것은 처음”이라고 의회전문지 더 힐에 말했다.
언젠가 ‘소설미디어가 비디오 스타를 죽였어요’라는 노래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IT 기업들이 워싱턴 내 로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머지않아 소셜미디어 역시 주류의 길을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분명 TV와 다를 것 같고, 적어도 아직 그것은 약자의 도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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