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가 언론에 던진 질문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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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이 많았나요?” “아니요. 이번에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필리버스터 토론에 앞서 준비한 한 의원의 성인용 기저귀 사진이 트위터에서 화제입니다.”


첫 번째 문답은 필리버스터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 방청하러온 시민과의 대화다. 두 번째 내용은 한 종편이 내보낸 보도다. 필리버스터를 바라보는 시민과 언론의 간극을 보여준 대조적 풍경이다.


테러방지법이 국회에 직권상정된 이후 9일 동안 국회에서 진행된 무제한 토론인 필리버스터가 끝났다. 38명의 의원들이 192시간 동안 발언했다. 기록도 많이 남겼지만,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를 보면 테러방지법의 본질은 간 데 없고, 여당과 야당의 정쟁만 병렬적으로 나열하거나, 가십성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일부 지상파와 보수언론, 종편 채널 보도에서 두드러졌는데, 테러방지법이 안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될 ‘국정원 권한 비대화’ 문제는 외면했다. 대신 필리버스터 야당 의원들 발언을 기록경쟁으로 몰아가고, 운동화를 신고 왔다느니, 기저귀를 찼다느니 하는 곁가지 보도에 치중했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합법적 의사진행 행위조차 ‘국회 마비’라며 야당 비난에만 열을 올리기도 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큰 테러방지법인데도 이에 대한 비판을 정쟁의 대상으로 치부했다. 한 술 더 떠 국회의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타협으로 국회를 운영하자며 마련한 국회선진화법이 모든 화근인양 매도하는 여당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기 바빴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의 본분을 지켰는지 의문이다.


언론의 보도가 이렇다보니 답답한 시민들이 직접 나섰다. 정보가 언론의 일방적 전유물이 아닌 세상에서 국회방송을 통해 정치인의 발언을 날 것 그대로 보며, 사이트를 만들어 댓글로 의원들과 직접 소통했다. 언론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직접 모든 발언을 시청해 언론의 보도가 편파적인지 왜곡인지 직접 판단할 기회를 가졌다. 신문이 쓰지 않아도, 방송이 보도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사실에 접근할 통로가 많았다. 필리버스터와 테러방지법 내용을 모아주는 사이트 방문자가 40만명에 달했고, 필리버스터 의원들에게 전할 발언을 모아주는 누리집엔 3만8000여명이 참여했다. 또 시민들이 직접 인상적인 발언을 모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했는데, 인기 예능 프로그램 제목에 빗대 ‘마이국회텔레비전(마국텔)’이라며 회자되기도 했다.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갈증을 시민들이 직접 채우려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과거처럼 언론이 유통하는 기사만으로 판단하는 현실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해도 모자랄 판에 회사의 논조에 맞추기 위해 사실을 비틀고 왜곡하는 한 ‘기레기’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을 것이다.


한 달 뒤면 20대 국회의원 선거다. 야당은 테러방지법 폐지를 총선공약 1호로 삼겠다며 공언했다. 여당은 야당의 발목잡기를 심판하고 정권에 힘을 실어달라며 맞서고 있다. 시민들은 필리버스터 이후 정치 무관심에서 서서히 벗어나 선거보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보도처럼 일부 지상파와 종편의 왜곡 행태가 반복돼 총선보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우려된다. 언론 스스로의 자정과 불편부당한 보도가 절실하다.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총선보도 준칙 실천이 중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준칙 4가지 조항은 공정한 보도, 유익한 보도, 지역주의 배제, 바른 선거 풍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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