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66'을 달리며 기자생활 20년을 돌아보다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냇 킹 콜의 ‘루트 66’은 이렇게 시작한다.
“If you ever plan to motor west, (자동차를 타고 서쪽으로 갈 계획이라면) Travel my way, take the highway that’s the best.(내가 권하는 길로 가세요. 최고의 고속도로를 타세요) Get your kicks on route sixty-six.(66번 국도를 신나게 달리세요.)”


대북 핵무장론이 전면에 등장하고, 새누리당 경선이 ‘유령당원’ 논란에 시달리며, 침체된 스마트폰 시장이 VR(가상현실)로 한계를 돌파하려는 이 엄중한 시국에, 휴가를 다녀왔다. 오해나 폄훼 없기 바란다. 거대담론에 맞서 개인과 일상의 중요성을 유머로 강조하는 문화부 기자 특유의 알리바이 방식일 뿐이니까.


1995년에 입사했으니, 올해로 21년. 회사에서는 20년 근속 휴가로 2주를 허락하는데, 이런 저런 급한 업무와 마감으로 연기를 반복하다 이번에야 기회가 닿았다.


냇 킹 콜을 알게 된 유년 시절 이후 루트 66은 작은 로망 중 하나였다.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미시간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 7개 주를 관통하는 미국 국도의 어머니. 그래서 별칭도 ‘마더 로드’다. 총 3200㎞. 하지만 루트 66 전 구간을 달린 것은 아니고, 동선 때문에 이번에는 중간 지점인 뉴멕시코 산타페부터 종착점인 산타모니카까지 1400㎞가량만 포함됐다. LA에서 렌트카로 출발해 네바다의 리노, 유타의 솔트 레이크 시티, 와이오밍의 롤링스, 콜로라도의 포트콜린스를 찍고 뉴멕시코의 산타페로 들어갔으니, 전체 달린 구간은 약 5000㎞다. 자랑 아니냐고 오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고백하자면, 미친 짓이었다.


총 8박9일 일정이었으니, 매일 서울~부산 거리를 달린 것이다. 화장실 가는 시간 말고는 계속 달렸다고 보면 된다. 휴양지로 휴가를 다녀오면 회사 돌아가기 싫다고들 하는데, 하루빨리 회사에 가고 싶었다. 가도가도 사막인데다 차 한 대 없는 와이오밍을 가로지를 때는 무언가, 뇌수술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냇 킹 콜의 부풀려진 가사가 로망의 시작이었다면, 루트 66의 현실을 일깨워 준 작품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였다. 조선일보 북섹션에도 일부 소개했지만, 많은 문학평론가들은 과대평가된 헤밍웨이에 비해 존 스타인벡의 과소평가를 지적하곤 한다. 문학은 감상적 낭만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라는 것. ‘분노의 포도’에서 주인공 조드 일가는 고향을 버리고 서부로 떠난다. 가슴 부푼 여행이 아니었다. 대공황과 모래폭풍 재난에 시달리던 오클라호마 농민들이 마지막 희망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던 때가 그 무렵이고, 이주 농민들이 죽을 고생을 하며 역마차에 짐 싣고 달렸던 길이 루트 66이었다. 우리로 치면 6·25 때 부산 피란길 정도가 비교될 수 있을까.


1938년 완공되었을 때는 미 대륙의 동서를 횡단하는 최초이자 사실상 유일한 동맥이었지만, 루트 66은 이제 추억의 길이다. 각 주가 경쟁적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옛 명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빼놓지 않고 ‘historic’이라는 형용사를 표지판에 부기할 만큼, 역사의 자취가 됐다.


이 길을 달린 의미,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추억이나 낭만의 소비만은 물론 아니다. 20년이라는 매듭 이후 스스로 짓는 다짐이랄까. 과잉 자극과 찰나의 새로움이 지배적인 2016년의 미디어 현실에서 뿌리를 잊지 않고 다시 달리겠다는 자서(自誓)로 이해해 주시기를.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