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 울리는 카나리아의 경고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맑고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 카나리아는 산소가 부족하면 죽는 새다. 옛날 광부들은 탄광 속의 잔존 산소량을 알아보기 위해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가곤 했다. 탄광 속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노래를 멈추고 먼저 탄광 밖으로 도망가기 때문이다. 앞으로 불어 닥칠 위기를 예고하는 전조를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 부르는 이유다.


위기는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중국 증시 폭락과 유가 급락으로 ELS(주가연계증권)와 원유 ETF(상장지수펀드)가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ELS 위기와 원유 ETF의 몰락은 파생시장의 버블 붕괴를 예고하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일찍이 파생상품을 두고 ‘금융시장의 대량 살상무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2003년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생상품은 그 위험을 순간적으로는 감출 수 있어도 늘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고 설파했다. ELS와 DLS의 위기를 단순히 투자자 손실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파생상품은 주식 채권 상품 통화 이자 등 수많은 기초자산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분화와 복제 과정을 거쳐 세계 금융시장 곳곳에 매복해 있다. 이런 연계 고리를 통해 금융시장에 ‘나비 효과’와 같은 폭발력을 갖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위력의 단면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미국 서브프라임 분야 모기지 부실은 주택 담보대출 채권을 묶어 판매하는 파생 금융상품들(CDO·부채담보부 증권, CLO·대출채권담보부 증권 등)을 통해 증폭돼 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을 쓰러뜨리고 전 세계 금융시장에 쓰나미급 후폭풍을 몰고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파생 상품은 ‘통제 불능’ 지대로 남아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553조달러(약 66경원)에 달한다. 이는 통계에 잡히는 수치일 뿐 실제로는 1200조달러(180경원)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전 세계 연간 총생산 규모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미국 씨티그룹의 총 자산은 1조8000억달러. 이에 비해 씨티그룹이 안고 있는 파생상품 익스포져(위험노출액)는 그 30배에 달하는 53조달러다. 총자산이 1조달러에 못미치는 골드만삭스도 자산의 58배에 이르는 51조달러의 파생 익스포져를 갖고 있다. JP모간체이스, BOA, 모건스탠리 등 다른 대형 투자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원유 등 세계 원자재 가격이 고꾸라지거나 중국 위안화가 추락한다면 ‘제2의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벌어질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먼 얘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 집값이 3년간 61% 하락한 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몰고 왔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었다. 최근 국제 유가의 하락세는 이보다 더 가파르다. 최근 2년간 70%나 떨어졌다. 위안화 약세에 베팅한 글로벌 헤지펀드와 이를 막으려는 중국 정부 간 ‘환율 전쟁’이 우리의 목전에서 펼쳐지는 상황이다.


위기는 똬리를 틀고 매복해 있다. 통제를 벗어난 파생상품은 무한 자기복제를 통해 금융시장의 괴물로 커버렸다. “그 거품이 터지는 날, 사상 가장 최악의 경제파국을 보게 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최근 ELS와 DLS 부실 사태는 그 위기를 예고하는 전조란 지적이다. 파생상품 시장의 버블 붕괴가 몰고 올 금융 위기에 대비하라는 ‘카나리아의 경고음’이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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