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좌파의 몰락?…아직 단정하긴 이르다

[글로벌 리포트 | 남미]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남미 정치는 2015년에 지각변동에 가까운 변화를 경험했다.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중도우파 야당 후보가 승리하며 12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12월 베네수엘라 총선에선 중도보수 야권이 좌파 집권당에 압승을 거두고 16년 만에 다수당을 차지했다. 브라질에서는 중도좌파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되면서 2003년부터 계속되는 노동자당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2016년에도 ‘우향우 바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4월 페루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여론조사에서 우파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남미 대륙에서 우파 정권 대열에 합류할 다음 차례가 페루라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남미에서 나타나는 이런 변화는 이른바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로 불리는 남미 좌파 블록의 붕괴 조짐으로 해석됐다.


남미 중도좌파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의 위상이 추락하는 모습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말 퇴임 당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그를 브라질 헌정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그러나 작년 말 여론조사에서는 39%로 내려앉았다. 룰라 때문에 2016년에 노동자당 정권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요즘이다. 1990년대 말부터 남미에서 세를 떨친 ‘좌파 대세론’의 수명은 이대로 끝날 것인가.


그러나 남미 좌파의 몰락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반론도 속속 나오고 있다.
상당수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남미가 우파 이데올로기에 기울고 있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염증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파 이데올로기를 전면적으로 수용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좌파 지식인들은 남미 좌파정권들이 겪는 위기의 원인을 세계 경제의 저성장과 이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에서 찾고 있다. 좌파정권들은 그동안 풍부한 자원을 이용해 국가성장 의제를 주도해 왔으나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제동이 걸리면서 정권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남미 좌파 위기의 배후로 미국을 드는 견해도 있다. 브라질 룰라 정부에서 대통령실 전략문제 보좌관을 지낸 사무엘 핑예이루 기마랑이스 네투는 미국이 남미의 좌파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해 악마시하고 부패·마약밀매와 결부시켜 궁지에 몰아넣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좌파 정상들도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탄핵 공세에 시달리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합법적인 근거가 없는 탄핵 시도는 쿠데타”라며 정면돌파 의지를 밝혔다. 끝없이 추락하던 국정수행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호전되는 것도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 참석한 좌파 정상들은 호세프 대통령과 연대를 확인하면서 탄핵 움직임을 강하게 비난했다. 강경좌파로 분류되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정치권력을 독점해온 소수 정치인이 의회 쿠데타 시도의 배후”라며 브라질 내 우파 진영을 직접 겨냥했다.


4월 페루 대선에 이어 오는 10월에 치러지는 브라질 지방선거는 남미 정치 지형의 변화에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페루에서는 우파 후보인 케이코 후지모리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다. 재임 시절 인권탄압 행위와 부패 혐의로 사법 처리된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1990~2000년 집권)이 케이코의 아버지다. 케이코는 2011년 대선에서도 초반 여론조사에서 앞섰으나 좌파 후보인 오얀타 우말라 현 대통령에게 역전패 당했다. 올해 대선 승부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이유다.


브라질 지방선거는 노동자당 정권 14년을 평가하는 의미가 있다. 노동자당이 승리하면 대통령 탄핵 공세를 누그러뜨리고 국정 주도권을 상당 부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패배하면 지방선거에 그치지 않고 2018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막기 어려워진다. 더 크게는 남미 좌파 진영에도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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