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과 외톨이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한·일 정상이 3년6개월 만에 자리를 같이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냉각된 한·일 관계를 녹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정상이 만나야만 실무자 간 협의가 가능해지고 위안부문제, 교과서문제, 영토문제 등 현안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일본 언론의 기대감은 취재진의 규모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수백명의 일본 취재진들이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진을 쳤고 방송사들은 특파원의 현지 리포터로 속보를 앞다투어 전달했다. 그렇지만 관련 보도는 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정상회담 개최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치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이 아쉬워 개최한 것으로 특별히 얻어내야 하는 외교적 과제가 없다는 냉소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일본 언론의 이런 시각은 ‘한국 외톨이론’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방송들은 ‘정상회담 개최=외톨이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낮 시간대 정보 프로그램들은 이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이 지금까지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회담도 없다는 ‘선 역사문제 해결, 후 정상회담’ 조건을 철회한 것은 국제정세가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외톨이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제조건을 철회하면서까지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시각의 기저에는 한국은 주체성이 약한 나라,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태도를 바꾸는 나라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본의 한 정보프로그램이 기획한 특집은 이 같은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일 오후에 방송된 한 방송사의 정보프로그램은 한국이 위안부문제 연내 해결이라는 전제조건을 포기하면서 한·일 정상회담 카드를 꺼낸 것은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며 네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먼저 ‘선 역사문제 해결’이라는 전제조건은 미국의 압력으로 철회했다는 설명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의 친중국 외교방침에 우려를 표명한 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위해서는 한·일 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정상회담을 요청(종용?)하자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카드로 미국만 잘 이용한다면 한국의 방침쯤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 이유는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지 못해 아태지역 경제동맹의 외톨이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세계무역 규모의 40%를 차지하는 TPP가 체결되자 한국 안에서 국익을 위해서 TPP에 참가해야 한다는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고 소개했다. 한·중·일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한·중·일 FTA 체결을 위한 작업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것도 TPP를 의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번째는 경제적 악영향이다. 2012년 이후 2년 만에 한국에 대한 일본의 투자액은 45억달러에서 2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인 관광객은 2012년에 352만명에서 2014년 228만명으로 100만명 이상 감소했다. 투자나 방한을 꺼리는 일본사회의 분위기가 한국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네번째 이유로는 박근혜 정부의 반일 무드 조성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아이돌 그룹에게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며 반일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한국사람들이 지쳤고, 이에 동조하는 언론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정보프로그램에서는 미·일관계가 긴밀해지니까 소외감을 느낀 한국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상회담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분석했다. 한·일 정상회담을 직접 제안하기 힘드니까 우회적으로 중국의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해 한·중·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 문제에서 공동전선을 취하던 중국이 올 들어 일본과 두 번의 정상회담을 가지자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전했다. 한·중 밀월을 거론하면서 일본 외톨이론을 말하는 식자도 있는 모양이다.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이 외톨이가 되더라도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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