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사회를 감시·비판하는 언론의 공적기능을 수행하던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정부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겨 정부의 논리를 대변하고 언론을 역비판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놀라움과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일각에서는 이를 언론의 위기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기도 한다. 언론이 당면한 위기를 거론하면서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언론사 내부역량의 한계와 전통적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추락이라는 내부적 요인 또한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언론의 신뢰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는 언론인들의 ‘대기업행’이다. 이 또한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제는 거의 일상사가 된 느낌이다. 상위 재벌 대기업 홍보실에서 언론인 출신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언론의 역할 중 대표적인 것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다. 현대 사회에서 권력이라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대표적이다. 청와대가 정치권력을 상징한다면, 재벌 대기업은 경제권력의 상징이다.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은 이런 권력들과 태생적으로 ‘한몸’이 될 수 없다.
물론 언론인에게도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기자생활를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언론인들이라고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고충이 전혀 없을 수 없다. 또 침몰 직전의 배(언론)에서 구명보트(권력행)를 찾는 것은 당연한 생존 본능의 발로로 설명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언론인들의 잇단 권력행이나 대기업행이 언론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이다. 무엇보다 언론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권력 유착과 자기검열을 간과할 수 없다. 언론이 갈수록 사양산업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언론 종사자들이 일상적으로 권력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평소 권력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향후 권력으로부터의 스카우트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언론인이 있다면 당연히 권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고, 권력과 척지는 행동은 가급적 꺼릴 것이다. 남은 사람들(현직 언론인들)과 옮긴 사람들(전직 언론인들) 간의 유착도 문제지만, 권력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언론인이 먼저 권력에 대한 눈치보기를 하고, 알아서 기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부 언론인은 한술 더 떠 재벌 계열사와 산하단체의 사외이사나 자문역을 맡아 권력의 이익옹호에 앞장서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언론이 행하는 공적기능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나아가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마저 뿌리채 흔들 수 밖에 없다.
이미 언론은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대응 실패와 그 결과물인 취약한 재정상태, 소수 대기업에 대한 광고수입의 절대적 의존이라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언론인들의 일상적인 권력행은 언론이 처해 있는 이런 만성적이고 복합적인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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