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의 '권력행'이 남긴 과제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한 방송사 간부 기자의 ‘청와대행’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인의 청와대행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거의 일상화된 느낌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사회를 감시·비판하는 언론의 공적기능을 수행하던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정부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겨 정부의 논리를 대변하고 언론을 역비판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놀라움과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일각에서는 이를 언론의 위기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기도 한다. 언론이 당면한 위기를 거론하면서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언론사 내부역량의 한계와 전통적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추락이라는 내부적 요인 또한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언론의 신뢰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는 언론인들의 ‘대기업행’이다. 이 또한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제는 거의 일상사가 된 느낌이다. 상위 재벌 대기업 홍보실에서 언론인 출신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언론의 역할 중 대표적인 것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다. 현대 사회에서 권력이라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대표적이다. 청와대가 정치권력을 상징한다면, 재벌 대기업은 경제권력의 상징이다.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은 이런 권력들과 태생적으로 ‘한몸’이 될 수 없다.


물론 언론인에게도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기자생활를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언론인들이라고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고충이 전혀 없을 수 없다. 또 침몰 직전의 배(언론)에서 구명보트(권력행)를 찾는 것은 당연한 생존 본능의 발로로 설명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언론인들의 잇단 권력행이나 대기업행이 언론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이다. 무엇보다 언론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권력 유착과 자기검열을 간과할 수 없다. 언론이 갈수록 사양산업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언론 종사자들이 일상적으로 권력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평소 권력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향후 권력으로부터의 스카우트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언론인이 있다면 당연히 권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고, 권력과 척지는 행동은 가급적 꺼릴 것이다. 남은 사람들(현직 언론인들)과 옮긴 사람들(전직 언론인들) 간의 유착도 문제지만, 권력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언론인이 먼저 권력에 대한 눈치보기를 하고, 알아서 기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부 언론인은 한술 더 떠 재벌 계열사와 산하단체의 사외이사나 자문역을 맡아 권력의 이익옹호에 앞장서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언론이 행하는 공적기능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나아가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마저 뿌리채 흔들 수 밖에 없다.


이미 언론은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대응 실패와 그 결과물인 취약한 재정상태, 소수 대기업에 대한 광고수입의 절대적 의존이라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언론인들의 일상적인 권력행은 언론이 처해 있는 이런 만성적이고 복합적인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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