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브라질, 다시 뜨는 룰라

[글로벌 리포트 | 남미]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요즘 브라질 사정이 말이 아니다. 국가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되면서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있고, 공식 통화인 헤알화의 가치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1930년대 초반 이후 처음으로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경제 전반을 뒤덮고 있다. 저성장과 헤알화 약세 때문에 브라질 국민 1인당 소득은 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정부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싸늘하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호세프 대통령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는 긍정 10%, 보통 21%, 부정 69%로 나왔다. 브라질에서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이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래 역대 정부 가운데 최악이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호세프 대통령 탄핵에 대해 66%가 찬성하고 28%가 반대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긴축과 증세를 통한 20조원 규모의 재정 확충 대책을 발표하고, 연방정부 부처를 39개에서 31개로 통폐합하면서 개각을 단행하는 등 나름의 위기극복 방안을 제시했으나 국정 동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이 위기의 늪에서 헤매면서 뜨는 인물이 있다. 브라질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룰라 전 대통령이다.
연방정부 통폐합과 개각으로 가장 주목을 받은 사람은 룰라 전 대통령이었다. 그의 뜻대로 수석장관이 바뀌었고 연립정권 파트너 정당에 장관직을 할애하며 지지를 얻어내는 정치적 거래를 성사시켰다. 호세프 대통령은 여전히 룰라의 그늘에 있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호세프 대통령의 정부 통폐합과 개각 발표는 전임자이자 정치적 후견인인 룰라의 영향력을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호세프가 흔들리고 룰라가 다시 뜨면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2018년 대선으로 모아지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룰라가 2018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집권 노동자당 지도부는 룰라가 적절한 시점에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말한다.


본인이 직접 대선 출마를 시사하기도 했다. 룰라는 지난 8월 말 라디오 방송과 회견을 통해 다른 인물이 후보로 나서기를 바라지만, 필요하다면 자신이 2018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6년 지방선거가 노동자당의 패배로 끝난다면 룰라의 정치 현장 복귀를 알리는 신호가 될지 모르겠다.


이와 관련해 브라질 좌파 진영에서는 최근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룰라의 지원 아래 좌파 성향의 정당과 노동자·농민·학생 단체가 참여하는 연합체가 활동을 시작했다.


브라질민중전선(FBP)으로 불리는 이 연합체는 야권의 호세프 대통령 탄핵 움직임을 비난하면서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긴축·증세 정책은 강하게 비판했다. 부자 증세와 공공부채 상환 중단을 요구하고 시장주의 경제정책을 밀어붙이는 재무장관 교체를 주장한다.


이 지면을 통해 노동자당이 인접국 우루과이의 집권세력인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를 본떠 좌파 정당과 사회단체를 아우르는 연합체를 구성해 2016년 지방선거와 2018년 대선에 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다. 정치적 성향을 같이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를 하나로 묶어 견고한 집권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2003년부터 이어진 노동자당 정권에 대한 피로감을 해소하면서 집권 연장을 모색하는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좌파 성향의 학자들은 9월 말에 발표한 공동 보고서를 통해 현 정부의 정책이 노동자당 정권의 경제적·사회적 성과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달 초에는 상파울루를 비롯한 10여 개 도시에서 브라질민중전선 이름으로 50여 개 정당·사회단체가 참여한 시위가 벌어졌다. 룰라가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는 해석에 갈수록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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