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vs IT : 융합없는 핀테크 정책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핀테크(FinTech)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핀테크란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 모바일 결제 및 송금, 크라우드 펀딩 등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 기술을 말한다.


미래 부가가치 산업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핀테크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애플과 한국 삼성이 각각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와 ‘삼성페이’를 내놨고, 구글과 페이스북도 자체 금융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핀테크의 결정판으로 통한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10년 전 인터넷 전문은행을 출범시켰다. 중국 텐센트와 알리바바도 올 들어 각각 ‘위뱅크(WeBank)’와 ‘마이뱅크(MYBank)’라는 인터넷 은행을 세웠다. 한국 금융당국도 지난 6월18일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이달 중 예비인가 신청을 받아 올해 안에 1~2곳에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내줄 계획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성복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1995~2014년 미국에서 설립된 인터넷 전문은행은 38곳으로, 이중 14곳이 부도나 인수, 자진폐업 등으로 퇴출됐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설립 초기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금리와 수수료 등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은행과 차별화되는 혁신적인 상품이나 서비스가 없을 경우 적자경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한국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국내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2002년 SK텔레콤과 안철수연구소 등 민간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브이뱅크(V-bank)’라는 이름의 인터넷 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2008년에는 관(官)이 주도했다. 금융위원회가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 은행을 도입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역시 규제였다. 이번엔 비금융 회사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50%로 확대하고 최저자본금을 500억원으로 낮추는 등 문턱을 낮췄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모양새는 2008년 때나 다름이 없다. 금융의 프레임에서 핀테크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금융(Fin)의 시각에서 기술(Tech)을 수용하는 정책 시각으로는 핀테크 산업이나 인터넷 전문은행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글로벌 핀테크의 조류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Unbundling of Bank(은행의 분해)’ 바람에서 볼 수 있듯이 결제, 송금 등 은행의 전통적인 서비스가 분해(unbundling)돼 Tech기업들이 제공하는 모바일 앱을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분담, 수행되는 게 요즘 추세다. Tech기업이 장악하는 모바일 플랫폼에 은행은 단순 ‘서비스 프로바이더’ 중 하나로 전락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성공은 Fin(금융)과 Tech(기술)의 융합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선 ‘규제와 제도의 융합’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금융회사에 대한 정책은 금융위원회, Tech기업에 대한 제도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담당하는 실정이다. 핀테크 육성을 위해 금융위원회와 미래창조부가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IT와 금융 융합에 따른 금융서비스 방안을 심의·확정하는 금융개혁회의나 자문단 등도 금융인과 금융 당국자 일색이다. Tech 분야 전문가나 미래부 관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Fin과 Tech 관련 정책이 융화하지 않으면 한국 핀테크 산업의 미래는 어둡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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