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경영계는 노동개혁을 할 생각이 있나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보수-진보, 노-사, 여-야 모두 저성장과 고용대란을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총도 결국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결정했다. 하지만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할 것으로 낙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다.


최경환 부총리는 최근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인 10일까지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한 합의를 이뤄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노동시장의 질서를 새로 짜는 중차대한 논의를 불과 열흘 안에 끝내라는 억지다. 노동계에서는 벌써 고무도장 역할이나 하라는 얘기냐고 불만이 터져나온다.


경영계도 압박 수위를 높인다. 전경련·대한상의 등 경제5단체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노동계가 강력 반대하는 ‘쉬운 해고’를 위한 ‘일반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지침이 아니라 아예 법으로 못박으라고 요구했다. 노동계를 협상 파트너가 아니라 바지저고리로 보겠다는 태도다. 현재의 노사정위도 민주노총이 빠져 있어 반 쪼가리라는 지적을 받는다. 설령 노사정위가 어렵게 합의해도 민주노총과 야당이 찬성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많은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서는 노사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고 양보와 타협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정부와 경영계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진정 노동시장 개혁을 할 마음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비단 ‘일반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의 법제화 주장만이 아니다. 경영계가 일자리 부족과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을 노동 경직성 탓으로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고불안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법적 정년이 보장되는 노동자는 극소수 대기업 정규직에 불과하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절반 수준을 육박하는 840만 비정규직은 오히려 지나친 노동 유연화 때문에 극심한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노조의 과도한 경영개입 등 불합리한 요구를 비판한 대목도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극소수 대기업에 국한된 얘기를 전체 노동계의 문제인 것처럼 왜곡했다. 노조가 회사에 당당히 경영참여를 요구할 수 있는 기업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노동자 경영참여가 법으로 보장돼 있는 독일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파업을 통한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체근로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하는 대목에서는 노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런 태도로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노동시장 개혁이 어렵다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경영계가 강경 일변도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5단체는 발표문 곳곳에서 “기득권 노동자들로 인해…미취업 청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나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부족의 책임을 노동계에 전가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정부 역시 노동시장 개혁을 내년 총선 대책으로 이용하려는 듯하다. 노동계가 반발해 협상 장을 박차고 나가거나 야당이 법제화에 반대하면, 노동시장 개혁과 청년 일자리 창출 실패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다. 대신 여당은 ‘일자리 창출당’의 이미지를 얻어 총선에서 손쉽게 승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희망이 없다. 정부여당이 권력을 유지할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공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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