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기자가 '회장님'을 부러워할 때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군산에 다녀왔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의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인문 강연과 현지 답사를 병행하는 연간 프로그램인데, 8월 강연이 기자의 차례였다.


일제강점기와 근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 개항지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8월의 공간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가장 컸지만, 군산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한 잡지 때문이었다. LS네트웍스가 계간으로 발행하고 있는 무가지 ‘보보담’이다.


‘보보담(步步譚)’은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는 뜻. LS네트웍스가 프로스펙스, 몽벨, 잭 울프스킨 등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임을 고려하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작명(作名)이다. 회사의 대외 홍보를 으뜸 임무로 하고 있는 사외보(社外報) 답지않게, 250쪽의 잡지에는 광고가 오직 한 페이지 뿐이다. 기업 이미지 홍보도 없다. 대신 그 안에 담은 건 ‘한국의 인문(人文) 풍경’이다. 한국의 인문 풍경이라는 거창한 표현이 크게 어색하지 않은 것이, 매호마다 한 지역을 집중 탐구한다. 땅, 산, 물, 사람, 음식, 골목, 시장, 역사…. 며칠 잠깐 가서 취재해 오는 게 아니라, 편집장이나 사진작가가 길게는 두 달을 함께 살면서 사람과 풍경을 한 권 전체에 담는다. 거의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박물지(博物誌)이자 인물지(人物誌). 지난 겨울호 특집이 군산·서천이었고, 이번에 나온 여름호 특집은 단양·영주였다.


군산 인문여행의 첫 방문지를 동국사로 정했다. 군산이 고향인 시인 고은 선생이 출가(出家)한 동국사는 원래 일본 조동종 소속. 조동종은 일제강점기 당시 제국주의의 종교적 전위였다. 창건 당시 지은 일본식 건축양식 법당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누가 봐도 일본식 사찰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슬픈 역사는 이제 예불의 장소인 동시에 교육의 현장이 됐다. 절 마당 한 켠에는 일본인들이 세운 ‘사죄와 용서의 비석’이 있고, 법당 한 켠에는 침탈 사료관이 있다. 침탈의 전위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육 현장이 된 아이러니. ‘보보담’ 군산 특집호에는 동국사 주지인 종걸 스님의 긴 인터뷰와 그 사연이 진진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보보담의 희귀한 개성과 이 잡지의 편집 주간인 LS그룹 구자열 회장의 뚝심은 신문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연매출 33조의 그룹 총수가 글까지 직접 쓰며 이 잡지에 들이고 있는 시간과 의지에 대한 이유였다. 그는 문화적 허영이나 호사(豪奢) 취미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호사라면 더 폼나는 걸 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었다. 청소년 시절 애독했다는 ‘뿌리깊은 나무’의 1976년 창간호를 꺼내보이며 말이다.


문화부 기자로 오래 일하면서 질투와 인정이 교차하는 몇몇 순간들이 있다. 유산을 물려받은 2세, 3세 자산가들이 그 자원을 엉뚱한 향락에 소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취향에 자발적으로 투자하면서 어떤 고급한 수준까지 끌어올렸을 경우도 그 중 하나다. 혹여 허영이나 호사가 일부 포함됐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허영과 호사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지 않을까.


‘보보담’으로 시작해 길게 돌아왔지만,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결국 취향에 바탕을 둔 기업들의 문화적 기부가 좀 더 확장되고 전파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 때문이다. 억지춘향 격으로 관심도 없는 일에 선심 쓰듯 큰돈을 한 번 내기 보다는, 작은 돈이라도 자신의 취향에 기반한 기부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메디치 가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보보담은 17호를 펴냈다. 계간이니 만 4년을 넘긴 셈이다. 부디 그 뚝심과 끈기가 다른 기업에게까지 폭넓게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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