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강요된 충성, 자발적 충성도 거부한다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대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변상욱 CBS 대기자

본론에 앞서 대통령 관련 보도 2가지를 살펴보자.
첫째는 8·15 특별사면. 대통령이 사면권을 발휘하면 사람들은 은연 중 대통령을 거대한 권력으로 받아들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사법적 정의와 형평성을 아예 무시할 수 있는 초법적인 권력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직후 일반사면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특별사면도 경축일마다 챙겼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 언론들은 앞다퉈 나서서 경제인 사면은 곧 경제 살리기라며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경제가 살아나리라는 기대에 찬 언론 보도는 생계형 사범 100만명 사면 이야기로 이어지며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또 다른 보도는 시쳇말로 ‘땡박뉴스’이다. 기자협회보가 올 상반기 동안 종합일간지 1면 톱에 실린 박근혜 대통령 사진의 빈도를 조사한 결과 매체 평균 25.9회였다. 대통령 얼굴이 신문 1면에 매일 걸리다시피 한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지상파 3사 메인뉴스를 분석한 결과도 다르지 않다. 맨 앞 주요뉴스 부분에 박 대통령이 등장하는 빈도는 ‘땡박뉴스’라 부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 Goffman)의 ‘연극적 분석’에는 ‘드라마트루기(Dramatrugy)’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번역하자면 극작술, 각색술, 연출 등을 두루 일컫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권력조직을 분석하는데도 쓰인다. 통치자가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연출행위가 드라마트루기이다. 그리고 드라마트루기는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이미지 관리이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통치자는 능력을 과시한다. 특별사면의 강행이다. 인간미도 과시한다. 가뭄 때 논에다 호스로 물을 쏟아 붓고 괜히 시장에 가 쇼핑을 한다. 공정하고 진실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경제인 특별사면은 권한 남용일 수 있으니 국민적 합의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 것도 그런 목적에서다.


두 번째가 계급의 고착화이다.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은 엄연히 다르다는 암시를 언행으로 내보이는 연출이다. 틈을 보이지 않는 언행과 행동규범이 여기에 속한다. 사적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는 철저히 봉쇄해 흐트러진 모습이나 꾸며지지 않은 모습의 노출을 피한다. 조크를 할 때도 지금부터 조크한다고 사전 언질을 주고 끝나면 곧바로 원래로 돌아간다. 자기가 얼마나 존재의 가치가 대단한지를 과시하려고도 한다. 잦은 외국순방과 알맹이 없지만 자주 벌이는 정상회담도 그런 류이다. 위계와 복종을 강조하며 행동을 통제한다. 청와대라는 조직이 불통의 상징이 되고 국무회의가 꾸지람 듣는 수준에서 끝나는 건 이런 결과이다.


세 번째가 직접적인 대응인데 여기에는 자기 행위의 정당성 강조, 비판과 공격, 결재 거부, 보복이나 불이익에 대한 암시 등이 속한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 대표에 대한 격하고 집요한 공세가 그러하고, 여야 합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도 이에 해당한다.


고프만의 이론에 따르자면 통치자가 이렇게 자기 이미지를 꾸며내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두 인물이 있다. 첫 번째 인물은 ‘외부 공모자’. 대통령 권한 밖에 놓여 있는 듯 보이는 외부 세력의 동조와 가세가 ‘드라마트루기’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물은 ‘관측병’이다. 여론을 살피며 통치자에게 이쪽으로 가셔야 한다고 슬쩍 귀띔해 주며 칭찬을 구걸하는 역을 맡는다.
외부 공모자이자 관측병…그것이 지금 우리의 이름이다.



변상욱 CBS 대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