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국수주의로 빠지나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최근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책임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고민을 공유했으면 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물산 주주들이 피해를 본다며 삼성과 대립 중이다. 삼성은 한국의 대표기업이다. 삼성이 단기고수익투자를 쫓는 헤지펀드에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할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더욱이 2000년대 이후 한국기업을 공격한 소버린, 칼아이칸 등의 헤지펀드들은 국민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다. 헤지펀드들의 먹튀(단기에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아 이익을 취한 뒤 한국을 떠나는 행위) 논란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주요 사건이 진행될 때 핵심 주역과의 인터뷰는 기자들에게 로망이다. 다수 언론들이 엘리엇과 만나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한겨레가 단독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


기사는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하다. 삼성은 3세 승계에 유리하다고 보고 합병을 추진했다. 엘리엇은 삼성이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논란 가능성을 간과한 허점을 틈타 자기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10만명이 넘는 소액주주들도 각자의 이익계산에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엘리엇 분쟁은 기본적으로 선악의 문제라기보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다툼인 것이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삼성-엘리엇 분쟁에 나름의 가치판단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적 역할을 하는 언론으로서는 삼성과 엘리엇 그 어느 편에 서기보다, 독자와 국민들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과 엘리엇을 인터뷰하는 것은 독자와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올바로 판단하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엘리엇과 인터뷰에 앞서 이 점을 분명히 밝혔고, 엘리엇도 이를 이해했다.


기자의 고민은 최근 삼성-엘리엇 간 분쟁에서 한국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민족주의적-달리 표현하면 국수주의적-보도태도와 연관이 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언론이 한국기업은 선이고 외국인은 악이라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한다고 걱정했다.


한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수출입 등 대외의존도가 높다. 주요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넘을 정도로 금융시장이 개방됐다. 한국 기업들은 수십년간 글로벌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민족주의는 국가나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성원들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내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개방된 시장에서 경제적 문제에 국수주의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글로벌사회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한국언론의 국수주의적 보도는 ‘주주친화경영’이라는 글로벌스탠다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인 ISS를 엘리엇과 한통속으로 매도하고,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하면 마치 국익을 저버린 매국노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부 언론이 엘리엇과 ISS의 모회사(모건스탠리)의 사주가 유태인이라는 점을 들어 ‘샤일롯의 후예’라며 반유대주의적 공격을 한 것은 특히 심각하다. 이스라엘 현지언론에 이런 내용이 보도됐고, 미국 월가에서도 우려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언론의 국수주의적 보도의 배경에는 유력 광고주(대기업)의 애국심 마케팅에 부응해 사익을 챙기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언론의 얄팍한 상술이 장기적으로는 국내기업에 ‘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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