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미디어 엘리트'입니까?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우리나라에도 유명해진 미국 드라마 ‘뉴스룸’은 특히 민주진보적 성향의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드라마 자체 완성도도 높지만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급격하게 나빠진 언론 환경은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드라마 속 언론인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줬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가만히 보다 보면 민주진보적 성향의 시청자들 입장에서 약간 멈칫 하게 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멈칫의 지점이라고 표현하니 마치 드라마를 자세히 봐야만 알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드라마 초반, 주인공인 앵커가 자신의 뉴스를 더 이상 회사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오로지 유권자(시청자)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해서 만들겠다며 밝히는 첫 일갈에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분들을 위해 앵커 멘트 전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어느 지점에서 멈칫하게 되는지 한 번 경험해 보시라.


“이 순간부터 방송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결정할 것이며 민주주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를 잘 아는 유권자라는 단순한 진실에 근거해 방송할 것입니다.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정보를 이해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방송하는 것 중에는 뉴스거리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최고로 사실적일 것이며 빈정거림, 추정, 과장 난센스는 지양할 것입니다. 뉴스는 인간미라는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데 이런 결정을 내리냐고요? 우리는 미디어 엘리트입니다.”


미디어 엘리트?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다. 솔직히 ‘엘리트’라는 말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진다. 한편으로는 ‘미디어 엘리트’라는 표현 대신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정도로 표현했으면 좋았겠지 싶은 마음도 든다. 아마 이러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엘리트’란 말이 주는 묘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엘리트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엘리트 : 어떤 사회에서 우수한 능력이 있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 지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


▲HBO가 방송한 드라마 뉴스룸

그런데 뉴스룸은 매우 노골적으로 ‘우리가 미디어 엘리트니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어!’라고 밝힌다. 사실 나 역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잠시 멈칫 했다. 하지만 이내 대단히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말에 백퍼센트 동의했기 때문이다. 맞다. 언론인들은 엘리트다. 다만 그건 언론인들 개개인이 더 높은 지능을 지녔거나 후천적으로 더 많은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역할’이 엘리트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보의 1차적 접근과 그 정보들 중에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길 정보를 선택하는 권한. 이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어쨌거나 언론인들에게 주어져 있다. 이건 언론인이 겸손하든 거만하든 상관없이 그렇다. 똑똑하든 멍청하든 상관없이 그렇다. 결국 ‘미디어 엘리트’라는 역할은 언론이 한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기능적으로 주어진 거부할 수 없는 필연적 역할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뉴스룸의 앵커는 매우 솔직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러한 권한을 분명하게 직시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매우 올바르다. 그 권한을 오로지 ‘유권자’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엘리트’란 말에 거부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어깨에 힘 팍 주고 자부심을 느껴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아가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엘리트’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레기’로 대변되어지는 대한민국의 언론인들. 반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미디어 엘리트’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이 아닐까?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주먹을 쥐고 민주주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미디어 엘리트로서의 ‘자부심’과 ‘거만함’을 당신들에게서 보고 싶다.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