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책 지면은 왜 비슷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스페셜리스트│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지난 주 어떤 외부 특강에서 ‘글쓰기’를 주제로 강의하다가 이런 도전적 질문을 받았다. “왜 일간신문의 북섹션(혹은 책 지면)은 대체로 비슷한 건가요. 혹시 메이저 출판사들의 로비 때문인가요.”


한 번 만들어진 프레임과 선입견은 이렇게 강력하다. 신문 책 지면을 꼼꼼하게 읽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올해 상반기 일간신문의 토요일자 책 지면에서 겹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읽지는 않고 쓰려고만 하는 요즘 세태의 반영이었을까. 물론 함무라비 법전은 나의 바이블이 아니므로 이런 반박은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책 팀장을 새로 맡은 지 6개월이 지났다. 처음 조선일보 북스를 책임지게 되면서 3년 전 움베르토 에코(83)와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당시 이 세계적 석학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장서각 2층에서 아마존 킨들(Kindle)과 자신의 종이책 ‘장미의 이름’을 함께 아래층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킨들은 부서졌고 종이책은 멀쩡했지만 조금은 작위적으로 보인 게 사실이었다. 종이책의 불멸을 강변하는 시대착오적 퍼포먼스랄까. 자신의 아이패드를 가방에서 꺼내며 에코는 내게 조용히 물었다. 종이책이 사라진다면 인터넷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가.


그는 인터넷이나 전자책이 유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돈은 많지만 책은 읽지 않는 ‘지적 빈자(貧者)’들이 걱정이라면서.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보의 바다’는 정보의 하수구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 정보의 민주화, 정보의 평등화로 흔히 떠받들어지곤 하는 인터넷의 역설이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건 선별과 여과의 긴 역사다. 클릭 한 번만 하면 책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어떤 책을 추천하느냐는 것.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조선일보 북스가 지난 6개월 동안 추구해왔던 노력도 이 지점에 있다. 우리의 취향과 관점으로 고른 ‘리스트’에 대해서 독자의 판단을 얻는 일 말이다. 


새로 맡은 뒤 시작한 코너 중에 ‘당신의 리스트’가 있다.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 등이 함께 하는 소설 추천 사이트 ‘소설리스트’에서 힌트를 얻었는데, 문화계 인사들 자신만의 ‘리스트’를 소개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리스트가 아니라 조선일보 북스가 원하는 리스트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쓴 작가 프랑수아 를로르에게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 책 5권”을 묻고, 이코노미스트 전 한국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에게 “한국을 좋아하게 만든 책 5권”을 내놓으라 요구하며, ‘철도원’으로 대표되는 감성 작가 아사다 지로에게 “당신을 울게 만든 소설 5권”을 부탁하는 식이다. 매주 게재라 부담이 적지 않고, 요청받은 작가들도 종종 ‘저항’하지만, 그래서 더욱 ‘밀당’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 


프린스턴대학 교수인 재미 소설가 이창래는 “예술에 순위를 매길 수 없다”며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 5권”을 고백했고, ‘인간중독’을 만든 영화감독 김대우는 “영화가 다다를 수 없는 소설”을 주제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할지도 모르는 리스트를 보내왔다. 모두 저마다의, 제각각의, 의미있는 리스트였다. 


다시 그 도전적 질문을 한 청중에게로 돌아온다. 북스 톱으로 추천하는 책들이 신문사들 사이에서 간혹 겹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공통의 리스트는 출판사의 로비가 아니라, 그 책이 지닌 출중함에 대한 출판기자들의 동의일 뿐이다.
여름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나날들이다. 삶은 유한하지만, 리스트는 무한한 법. 부디 서늘한 여름들 되시기를.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