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은 기본, 자정 넘어 퇴근하고 새벽에 병원·기자실로 직행

<메르스 한달, 취재기자들은>
장기화에 스트레스 호소
메르스 감염 불안감도
정부 비밀주의 취재 애로
성장 계기…오늘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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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서 시작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한 달을 넘어섰다. 전체 확진자는 총 175명(23일 오후 9시 기준)으로 연일 늘고 있지만 지난 17일부터 추가 확진자 수가 3명 이하 수준을 유지하며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메르스 현장 이곳저곳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뉴스를 전달했던 기자들은 한숨 돌리며 메르스 종식 여부에 주목하고 있지만 사태가 언제 급변할지 몰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를 비롯해 메르스 취재에 투입된 기자들은 지난 한 달 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야근은 기본이고 새벽 2시에도 확진자, 사망자 발표가 나오는 터라 밤을 꼴딱 새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충헌 KBS 의학전문기자는 “엠바고가 없었기 때문에 새벽에도 발표가 나왔다. 덕분에 야근으로 날을 꼬박 새우는 일이 많았다”며 “20일 정도 그렇게 하다 이후에는 조근, 야근, 일근 3교대로 나눠 리포트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A기자도 “한 달 가까이 자정 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며 “새벽에 사망자가 나오면 병원, 기자실로 달려갔다. 신문 판갈이 때문에 새벽에 회사를 들어가는 일도 잦았다”고 말했다. 


인원 부족 등 취재 환경이 열악한 지역 기자들의 경우 업무 강도는 한층 더 심하다. 지역 일간지 B기자는 “3명의 팀원들이 하루에 적게는 6개, 많게는 13개 가까이 메르스 관련 기사를 썼다”며 “사건팀 기자들이 주축을 이뤄 메르스를 전담 취재했는데 메르스뿐만 아니라 사건도 챙겨야 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 일간지 C기자는 “메르스 확산이 심할 때는 메르스에만 집중할 수 있어 힘들지 않았는데, 오히려 메르스 확산이 주춤하고 전담팀이 느슨해지니까 업무 강도가 세졌다”며 “기존 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메르스까지 커버하려니 좀 더 바빠졌다”고 말했다. 지역 KBS D기자도 “메르스가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메르스 보도뿐만 아니라 기획이나 사건들까지 다 챙기려니 부담이 된다”고 토로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 공용브리핑룸에서 메르스 관련 관계부처 회의 결과 및 향후 대책에 대해 브리핑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김지은 뉴시스 기자는 “초기에는 업무 강도 때문에 힘들었는데 일이 분담된 이후에는 정신적으로 부담이 들기 시작했다”며 “기사 질도 생각해야 하고 분석 기사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E기자는 “매일 복지부 브리핑을 들으며 똑같은 내용을 다루다보니 정신적으로 지쳤다”며 “자꾸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역 방송사 F기자는 “지역에서 처음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여러 언론사들이 유족들을 찾아갔었다. 힘든 상황일 텐데 기자들이 계속 심정을 물어보니 죄송한 마음이 컸다”며 “계속 환자, 사망자들을 따라가야 하는 취재라 마음이 좋지 않을 뿐더러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메르스에 노출될 수 있다는 상황도 기자들을 힘들게 한다. 지역 일간지 B기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 불안감이 더 크다”며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취재하고 아이가 있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 혹시 몰라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 댁은 찾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자들을 지치게 하는 것은 정부의 제한된 정보 제공이다. 김지은 기자는 “이슈가 터지면 기자들의 업무 강도가 세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번 메르스 사태의 경우 복지부 공무원들의 태도에 기자들이 지친 면이 크다”며 “제한된 정보만 제공하려는 태도와 팩트 확인도 제대로 안 해주려는 비밀주의 때문에 기자들이 실망하고 힘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E기자도 “지금은 조금이나마 정보 공개를 하고 있지만 하루에 수십 명씩 확진자가 쏟아졌을 때는 복지부조차 ‘나도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행동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기자들이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은 복지부 브리핑 때뿐이다. 취재의 벽이 확실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기사를 계기로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도 기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종합일간지 A기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감염병 방역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왔을 때를 대비한다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도 “대형 재난을 겪는다는 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기자에게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며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즐겁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열심히 보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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