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헌법 근간 흔드는 아베 안보법안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15891, 2584
며칠전에 도쿄신문을 읽다가 1면 오른쪽 중간부분에 박스 처리된 숫자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동일본 대지진 때 사망한 희생자와 행방불명자를 나타낸 수치다. 그 옆쪽에는 3244, 228863이라는 두가지 숫자도 나란히 게재돼 있었다. 재난 발생 이후에 사망한 분들과 4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정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피난민들의 수치다. 이들 수치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수치의 배후에 동일본 대지진의 비참한 현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숫자를 보면서 3이라는 숫자를 놓고 일본사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이 떠올랐다. 지난 4일 중의원 헌법 심사회에서 일본 사회를 대표하는 3명의 헌법학자가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각각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사람으로 추천한 학자들이다. 이들 3명은 아베 수상이 밀어 붙이려는 안보법안에 대해서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자민당이 자신들의 논리를 대변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추천한 하세베 야스오 와세다대 교수조차도 위헌이라고 밝힌 것은 정국에 충격을 던졌다. “(안보법안은) 지금까지 정부가 견지해온 논리 범위 안에서는 설명할 수 없다.” “법안이 허용하는 자위대 활동이 헌법상 금지된 해외에서의 무력행사와 일체화할 우려가 높다.” 


하세베 교수는 지난해 11월 외교와 국방 등에 대한 국가기밀 누설 시 엄벌하는 특정기밀법 제정에 대해서 찬성의견을 밝혀 어용학자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헌법 심사회에 자민당 측 참고인으로 추천되자 주변에서는 드디어 변절했다는 말들이 회자되기도 했다. 원래는 사토고지 교토대 명예교수에게 참고인으로 출석해 줄 것을 타진했지만 본인의 고사로 하세베 교수로 변경됐다는 후문이다. 그런 사코 교수도 6일 참석한 심포지엄의 기조연설에서 아베 수상의 안보법안 제정 움직임은 헌법의 근간을 흔들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헌법 심사회 하루 전인 3일에는 173명의 헌법학자가 ‘안보법안에 반대하고 신속한 폐안을 요구하는 헌법연구자의 설명’을 발표하는 등 전문가의 법안반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스가 관방장관은 ‘(안보법안이) 위헌이 아니라는 견해를 가진 저명한 헌법학자들도 많이 있다’고 반론했다. 그렇게 많다면 합헌의견을 가진 학자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대보라는 야당의원의 질의에 관방장관은 3명의 학자를 거명해 실소를 자아냈다. 답변에 대해서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자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을 돌렸다. 합헌의견이 소수의견이라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15일에는 10개 분야 2700여명의 학자 그룹이 법안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물리학, 역사학, 천문학, 교육학 등 안보법안을 전문영역으로 하지 않는 학자들까지 참가했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토대 명예교수도 성명 발기인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6분의 5. 같은 날 국회 헌법 심사회가 고치현에서 개최한 지방공청회에서 일반 공모로 선출된 6명의 발언자 중 5명이 안보관련 법안은 위헌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반대의견은 자민당의 권유로 공모에 응한 고치현 지사뿐이었다. 또 32극단과 4단체로 구성된 ‘안보체제 타파 신극단인회’가 1960년 이후 반세기만에 기자회견을 개최해 법안철폐를 요구했다. 


자민당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하세베 교수의 위헌발언 이후 일본사회에서 위헌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자신의 의견을 대변해주기를 바라는 학자조차도 위헌의견을 낸 것은 정부 여당의 논리가 애초부터 무리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 하세베 교수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입장을 피력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참고인 추천과정에서 충분히 체크하지 못하는 수상관저의 시스템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안보법안에 대한 논리적인 파탄과 통치시스템의 기능저하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아베 정권의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상이지 않을까. 국회 심의를 거듭하면 할수록 안보법안의 논리파탄은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16일자 아침신문을 펼쳐보니 도쿄신문,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 3개지는 안보법안 관련 기사들을 1면에서 주요하게 취급했다. 보수언론들조차 두둔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8월에 발표할 패전 70년 담화가 아베 정권의 갈림길이 되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더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