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는 사주 소유물 아냐…협박 먹히는 언론사슬 끊고 싶어"

[기협 인터뷰] 전남일보 이재욱 사장
전면광고 포기하고 우리사회 본질 묻는 '공 프로젝트'로 반향
단 1000부를 발행해도 돈 주고 찾아보는 신문 만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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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제조업체를 운영했던 이재욱 사장이 전남일보의 경영을 맡은 게 2013년 8월.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언론사 사장으로 오자 수군거렸다. 언론에 문외한인 데다 광주에 연고도 없었기에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라거나 “2~3년 사장 노릇하다 떠나겠지”라고들 했다.


그는 “내가 뭐길래”라며 쿨하게 받아 넘겼다. 말아먹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집안 어른들이 맡긴 것일 뿐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언론사를 통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월급 안 받고, 운전기사 안 두고, 법인카드 없이 지내온 까닭이다. 그런 그가 전남일보가 올해 1월부터 시작한 공공성 회복 캠페인 ‘공 프로젝트’를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했다고 들었다.
“언론사를 맡게 된 다음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신문 맨 뒷면을 할애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전면광고를 무료로 실을 때가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그것을 깨고 싶었다. 광고가 없을 때 한 면을 할애해 캠페인을 싣자고 결정한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닌데.
“지난해 8월 매일경제 지식포럼에서 김홍탁 제일기획 마스터를 만났다. 아젠다 캠페인에 대해 말했더니 판을 짜서 재능기부로 재미있게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렇다고 바로 된 것은 아니었다. 김홍탁 마스터의 도움으로 광고업계 등에서 활동하는 외부 인사들을 모아 TF팀을 조직했다. 4개월 정도 준비해 여수공항 관제사를 첫 회로 내보냈다. 지금도 분기마다 만나 주제를 마련하고 공 프로젝트 주인공을 선정한다.” 2015년 1월5일자 전남일보의 마지막 지면에는 ‘본질을 묻다’ 다섯 글자와 함께 아스팔트 활주로에 서 있는 여수공항 강성언 관제사의 사진이 실렸다.

▲이재욱 전남일보 사장은 “단 1000부를 발행해도 돈 주고 찾아보는 신문,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등불 같은 신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공 프로젝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 세월호 참사나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지붕 붕괴 사고 등이 있었다.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건사고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인재로, 본질을 망각해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라고 판단했다. 본질은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자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동서 간 화합이 안 돼 있다. 언젠가 분명 통일이 될 것인데 동서 간에도 화합이 안되면 남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겠나. 그래서 광주전남에 한정되는 이슈가 아닌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어떻게 전남일보 사장을 맡게 됐나.
“전남일보는 조부와 부친의 뒤를 이은 가업이다. 집안에서 오래 운영했지만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07년부터 제조업을 맡았다. 그런데 2009년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이듬해 조부께서도 돌아가시는 바람에 신문사를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집안 어른들께서 네가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사실 2번 거절했는데 어른들께서 거듭 제안하셨다. 6~7년간 제조업체를 조금씩 성장시키며 잘 운영해온 것을 보고 뭐든 맡기면 말아먹지는 않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가 부담이 됐을 것 같은데.
“처음 취임하고 전남일보에 가보니 직원들이 나에 대한 경계심,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더라. 하지만 일으키기로 마음먹은 만큼 잘하고 싶었다. 나는 전남일보에서 월급을 받지 않는다. 운전기사도 없고 법인카드도 없다. 직원들에게 늘 말하지만 언론사를 통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개인의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솔직히 언론사는 우리 집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운영하는 대주기공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신문사를 한다고 이득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전남일보에 지원금을 주고 있다. 전남일보에 채무가 많았다. 손해가 점점 커지다보니 정리하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조부, 부친께서 전남일보만은 지켜달라고 늘 말씀하셨다. 때문에 유상증자를 통해 제로베이스를 만들고 한 번 해보자고 결정했다.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지난해 흑자를 기록했다. 언론사의 작은 움직임이 지역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돈보다 숭고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됐을 것이다. 작지만 날이 서있고,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언론사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대주기공을 경영하고 있다. 언론사와 기업경영,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 같은데.
“대주기공은 포스코에 기계를 납품하는 회사다. 포스코 쪽에서 처음 2~3년 동안은 경계심을 갖고 나를 만나더라. 포스코 입장에서는 중요한 기계를 납품하는 회사의 수장이 바뀌는 것에 민감하다. 젊은 놈이 사장으로 와서 일을 하니까 불안했던 모양이다. ‘이놈이 잘할 수 있을까.’ 처음에 굉장히 세게 가드를 내리지 않으면서 압박을 하더라. 그런데 그것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준 계기가 됐다. 거꾸로 신문사는 내가 안 찾아가도 지역단체장이나 기관장들이 찾아온다. 항상 ‘내가 뭐길래’하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에 절반은 전남일보에 있고, 나머지는 대주기공이 있는 포항에 거주한다. 언론사 사장으로 발이 땅에서 떨어질 쯤에 다시 포항으로 가 무릎이 닿는다.(웃음)”


-지역 언론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경영에 어려움은 없나?
“경영이 쉽지 않다. 전남일보가 잘해서 지난해 흑자를 낸 것이 아니다. 계열사에서 신문을 팔아주고, 사업비 지원을 하고 사장 봉급 없고, 법인카드 없고 운전기사 없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 등 6가지 이유에서다. 이것들을 빼면 마이너스다. 이 점을 항상 부각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6가지가 없어도 이익이 나는 것이다.”

-독자는 줄었고, 지역에는 신문이 넘쳐난다.
“언론사들이 연명하며 문을 닫지 않는 이유는 약간의 협박이 아직도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슬을 끊고 싶다. 언론은 ‘아니면 아니고 맞으면 맞다’라고 해야 한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면에 자주 관여하나?
“딱 한번 있었다. 지역 시민단체가 주관한 ‘김대중 전 대통령 탄신 90주년 기념행사’를 보도하는데 기사 제목을 ‘DJ 탄신 90주년 기린다’라고 썼더라. 김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끈 큰 인물이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행사 이름을 그대로 따라 성인이 태어난 날을 뜻하는 ‘탄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6·4지방선거 때 정치부, 사회부, 편집부 기자들을 불러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말라고 했다. 똑같은 지면을 할애하고 유리·불리한 질문을 나누지 말고 똑같은 질문만 하라고 말했다.”

-기사를 빼달라는 부탁은 없나?
“연락이 많이 오긴 한다. 아무 일도 아닌데 긁어 부스럼 만드는 기사가 있다. 그런 것은 알아보면 기자 개인적으로 감정이 있는 경우다. 대신 아무리 연락이 왔다고 해도 분명 문제가 되는 사안이라면 그 기사 그대로 밀고 나간다. 그게 사주가 할 일이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다. 전남일보는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있나.
“그날 지면에 실린 기사 중 피드백이 좋을만한 기사들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관련 동영상을 제작한다. 신문은 제작하면 끝인데, 페이스북은 올리고 난 다음부터 인터랙션을 시작한다. 페이스북 등 SNS 관리를 위해 미래미디어사업부를 만들었다. 여기서 페이스북, 홈페이지 등을 관리한다. 홈페이지는 아직 건들지 않았지만 앞으로 할 계획이다.”

-지역신문이 어려워지면서 직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고 들었다. 전남일보는 어떤가?
“언론사에 와서 직원들 임금을 보니 낯이 뜨거웠다. 내가 운영하는 제조업과 차이가 많았다. 그렇다고 돈을 대출해서 직원들 처우를 개선해줄 수는 없다.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나부터 신문사의 이익을 사주의 이익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협박해서 광고를 따오는 것은 안 통한다. 광고비와 사업비로 운영되는 회사가 아니다.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남일보의 이미지를 바꿔나가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전남일보는 사주의 소유물이 아니다. 광주전남의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언론사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사장 취임 후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나?
“기존에는 지자체에 할당돼 있는 돈을 누가 어떻게 연줄로 끌어 오는가 싸움이었다. 이제는 ‘크리에이티브 시대’다. 판을 짜고 명분을 만들어주고 똑같은 돈을 벌더라도 멋진 판을 만들어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부친이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친의 뒤를 잇고 싶은 생각은 없나?
“솔직히 안 해본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뭔데(그럴 자격이 있느냐)’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전남일보가 정치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인물들을 키워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그의 부친, 고 이정일 회장은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내년에도 공 프로젝트는 계속되나?
“물론이다. 형태는 바뀔 수 있지만 이 프로젝트는 지속될 것이다. 나는 지면만 제공할 뿐이다. 각계 전문가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통비나 숙박비 등이 든다. 사실 신문사가 지원해야 하는데 감사하게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앞으로 전남일보를 어떻게 이끌고 싶나?
“단 1000부를 발행해도 돈 주고 찾아보는 신문을 만들고 싶다. 그게 ABC협회 부수 10만부, 50만부 이상의 가치와 의미, 파급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남일보라는 이름을 대면 무얼 하든 세련되고 명분 있는 일을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나아가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등불 같은 신문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목소리도 포용하고 싶다.”


이재욱 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11일은 마침 ‘공 프로젝트’ 회의가 있었다. 하반기 공 프로젝트 주인공을 선정하는 자리였다. TF에 참여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진정성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흔쾌히 동참했다”면서 “지역 언론에서 시작한 작은 불씨가 커져서 전국으로 퍼졌으면 한다”고 했다. 변순철 사진작가는 “어릴 때는 개인적 자아가 컸는데,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소명을 생각한다. ‘공 프로젝트’는 나에게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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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의 ‘공 프로젝트’ 전면광고. (왼쪽부터) 1월 주제 ‘매뉴얼’의 주인공 강성언 여수공항 관제사, 3월 ‘허세’ 김윤곤·건우 조선내화 생산직 父子, 5월 ‘인성’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전남일보 ‘공 프로젝트’는

‘본질’ 지키자는 공익 캠페인
매주 월요일 맨 뒷면에 실어


‘공 프로젝트’는 전남일보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익 캠페인이다. ‘공’은 공익·공공성 회복을 뜻하는 公과 共, 사회적 공헌의 貢을 의미한다. 마음을 비우고 다 내려놓는 불교의 空과 숫자 0, Zero 등 기본에서 다시 출발하자는 뜻도 담고 있다. 변순철 사진작가 등 각계 전문가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공 프로젝트 덕분에 매주 월요일 전남일보의 맨 마지막 면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전면광고로 채워진다. 매달 첫째 주 월요일은 후면광고가 맨 앞면에 나오도록 반대로 접어 발행한다. 전면광고를 활용해 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올 한 해 동안 전개하는 대주제는 ‘본질’. 지난해 세월호 참사,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등 본질을 망각해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 발생했다. 이를 되새겨 보자는 의미로 ‘본질을 지키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매 월 달라지는 12가지의 소주제는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화두다. 올해 1월에는 ‘매뉴얼 부재’를 지적했다. 여수공항 관제사 강성언씨를 모델로 내세워 항공기 안전과 매뉴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2월에는 양극화 해소를 주제로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을 등장시켰다. 3월에는 중소기업에서 함께 일하는 부자의 이야기로 우리 사회의 허세문화를 비판했다. 이어 투명성, 인성,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 우리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환기했다. 표현 방식은 바뀔 수도 있지만 공 프로젝트의 공익적 가치는 내년에도 쭉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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