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향한 고언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삼성발 빅뱅(대규모 사업개편)이 경제계의 화두다.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발표에 이어 대규모 추가 사업개편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삼성전자의 삼성SDS 합병설은 그 중 하나다. 합병 수혜주로 꼽히는 SDS의 주가는 5월 한달간 30% 이상 크게 올랐다.


하지만 ‘머니게임’이 사업개편의 본질은 아니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보도자료에서 사업 시너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이 불과 얼마 전 시너지가 없다며 합병설을 부인한 것을 기억하는 투자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3세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활용해서 이재용-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사-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고리를 통해 그룹의 심장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SDS 흡수합병설 역시 마찬가지다. 두 회사간 시너지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주된 이유는 3세 승계에서 찾아진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합병 이후에는 이 부회장이 갖고 있는 SDS 지분 11.25%가 삼성전자 지분 1.51%(5월말 기준)로 바뀌어, 이 부회장의 전자 지분이 종전의 거의 4배 수준인 2.08%로 껑충 뛴다. 


삼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SDS 신주인수권부 사채의 헐값발행 등을 통해 3세들에게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핵심 주식을 넘겨줬다. 정부는 뒤늦게 상속세법을 고쳐 이를 차단했다. 이후 삼성은 3세들이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삼성에버랜드와 SDS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동원했다. 그리고 지난해 이 두 기업을 상장시켜 3세들에게 각각 수조원이 넘는 막대한 이득을 안겨줬다. 최근 삼성의 사업구조 개편은 3세 승계를 위한 3단계 작전인 셈이다.


합병·분할 등의 사업개편은 기본적으로 경영판단 사항이다. 이사회와 주총에서 형식요건만 갖추면 통과된다. 하지만 이사회의 결정이 무조건 용인되지는 않는다.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에 부합할 때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삼성은 시장 반응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과 관련해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주주들 불만이 예사롭지 않다. 


삼성의 사업개편에 대한 판단은 신중을 요한다.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의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승계 목적과 사업 시너지가 함께 구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삼성에 무조건 사업개편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삼성은 사업개편의 본질과 다른 이해관계자들에 미치는 영향을 좀더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삼성 계열사의 주주인 외국계 연금의 한 임원은 “삼성 계열사 합병으로 중복되는 조직과 인력이 구조조정되고, 소액주주들이 불확실성에 노출되고 있다”면서 “삼성의 사업구조 개편이 최대한 공정하고,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3세들에 대한 주식 헐값 배정으로 10년 이상 편법·불법 상속 논란에 시달렸다. 지금은 일감 몰아주기와 상장을 통해 얻은 천문학적 자본이득의 환수를 겨냥한 이른바 ‘삼성(이학수) 특별법’ 추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이재용 부회장이 사업개편과 관련해 또 다른 논란의 불씨를 만드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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