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 겐지 기자의 명복을 빌며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또 한명의 저널리스트가 희생됐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지난 1일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後藤健二)씨를 참수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장면이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그런데 이 비극적 사건을 놓고 일본 아베 정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자국민 구출을 명분으로 해외 분쟁에 적극 개입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해외에서 위험에 처한 자국민 구출을 위해 자위대가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어 “지리적으로 어디이기 때문에 (집단 자위권 행사에) 맞지 않는다거나 가깝기 때문에 맞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고토 기자가 아베 총리의 이런 발언을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일본에선 2∼3년마다 분쟁 지역 또는 시위 현장에서 죽는 기자들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 독립언론사 소속이거나 프리랜서로 뛰고 있는 기자들이다. 


지난 2007년 9월27일 일본 내 통신사인 APF의 프리랜서 기자였던 나가이 겐지(長井健司) 기자가 미얀마 민주화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가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오른손에 카메라를 꼭 쥔 채로 발견됐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부군의 발포에 놀라 흩어지는 시위대를 담기위해 셔터를 누른 것이다. 2010년 4월10일에는 로이터통신 영상기자인 무라모토 히로유키(村本博之)가 태국 방콕에서 시위대와 정부군의 충돌 현장을 취재하다가 왼쪽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많은 외신들이 현장을 떠났지만 무라모토는 용감하게 현장을 지키다 변을 당했다. 또 2012년 8월20일에는 야마모토 미카(山本美香) 기자가 시리아 내전 현장을 취재하다가 목과 오른팔 등에 총격을 받고 숨졌다. 야마모토는 분쟁취재 전문언론사인 ‘재팬 프레스(The Japan Press)’ 소속으로 아프간, 이라크 전쟁 등에서 활약한 베테랑 종군기자였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분쟁과 시위를 취재한 이유는 참상을 제대로 알림으로써 좀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신념에서였다. 야마모토는 생전에 한 강연에서 자신이 위험한 분쟁지역을 뛰어드는 이유에 대해 “세계 어디에선가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런 존재를 알면 알수록 그들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 무엇인가 해결책이 없는가를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IS의 희생양이 된 고토 기자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일반 회사를 다니다 뛰쳐나와 1996년 ‘인디펜던트 프레스’란 독립 제작사를 설립한 후 중동과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의 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왔다. 고토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소식을 접한 후 일본 언론에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다”며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어떤 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같은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도 페이스북에 “시리아, 이라크, 소말리아 분쟁 지역에서 사람들의 고통을 전해온 남편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고토와 같은 분쟁지역 전문기자들의 죽음을 자신의 우경화 행보를 합리화하는데 악용해선 안된다. 오히려 이들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곳에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알리고자 했던 그 ‘진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고토 기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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