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요양원 화재 겪고도 값비싼 교훈 또다시 망각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전남 담양 펜션 화재참사 취재 후기-뉴시스 광주·전남본부 배동민 기자

▲뉴시스 광주·전남본부 배동민 기자

예비신랑·새신랑·새내기 대학생 등 희생자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이 먹먹

기본을 잊은 대가는 너무 아프고 비극적이었다”


‘담양 펜션 화재 진화 중, 화상 환자 2명 이송’
처음 파악한 사건의 내용은 단순한 화재였다. 습관처럼 기사를 써 내려갔다. 제목도 인용구 그대로였다. ‘펜션’이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에 불이 완전히 꺼지면 숙박객 몇 명이 대피했는지, 연기를 들이마시거나 화상을 입은 다른 환자는 없는지 물어보면 되겠다 싶었다. 


토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의 당직, ‘귀찮을 일 없어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그렇게 사건기자의 기본을 잊어버리고 놓쳤다.


3줄, 1단 기사를 송고하려는 순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건물 내부에서 4명이 못 빠져나온 것 같다.’ 뒷목이 당겼다. 급하게 제목과 기사를 고치기 시작했다. 1줄이 더 늘었을 뿐이지만 내용의 무게감은 차원이 달랐다.


1시간 뒤 화상 환자 2명은 사망 4명, 부상 6명으로 늘었다. 부상자 중 29살 청년은 온 몸에 화상을 입어 위독한 상태였다. 그 역시 사고 8일 만인 11월23일 끝내 생을 달리했다.


화재로 무너져 내린 펜션 바비큐장은 안타까운 사연들로 채워졌다. 결혼 두 달을 앞둔 예비신랑, 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새신랑, 생애 첫 패러글라이딩을 경험한 새내기 여대생의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울고 또 울었다. 


‘사망자는 없다’고 썼다 지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기본을 망각했던 난, 오열하는 가족들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잊어서도 놓쳐서도 안 되기 때문에 기본(基本)’이라고 수 십 번을 곱씹었다.


화재는 또 다시 인재(人災)였다. 불이 난 바비큐장 등은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었다. 불이 나기 쉬운 구조로 돼 있었지만 소화기 한 대 없었다. 바비큐장과 마당 등으로 국유지 270㎡를 무단 점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그런데도 매년 위생이나 소방 안전 점검을 해온 담양군과 소방당국은 이를 몰랐다. 불법 건축물에 소방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지만 점검 결과는 ‘양호’였다.


불과 반년 전 세월호 참사와 20여명의 사상자를 낸 장성 요양병원 화재를 겪었지만 우리 사회는 값비싼 교훈을 또 다시 망각했다. ‘안전 불감증’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역사는 비극만 반복되는 듯 했다.


더욱이 불법을 자행한 펜션 주인은 광주광역시의 한 기초의원 최모씨였다. 형식상 대표는 아내였지만 부지 매입부터 관리, 홍보까지 직접 맡아왔다. “아내가 주인”이라고 부인했지만 경찰은 조사 결과 최씨가 실질적인 운영자라고 결론 내렸다. 최씨는 구속됐다.


기초의원의 겸직이 불법은 아니지만 매년 의원 1인당 3000만원이 넘는 의정비 등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가고 있다. 올해는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논리로 의정비를 인상하기도 했다.


▲전남 담양군 대덕면 한 펜션에서 불이나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은 가운데 16일 오전 소방과 경찰이 화재 현장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최씨는 한 달 평균 20여일을 담양 펜션에 머물면서 일을 해왔다.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더라도 평일 2주 가량을 펜션 주인으로 살아왔다. ‘의정활동 전념’이라는 논리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리더라는 말이 무색했다. 오히려 법과 기본 원칙을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무시하고 이용했다. 그리고 기본을 잊은 대가는 너무 아프고 비극적이었다.


남은 과제는 경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왜 법과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불법 건축물이 포함된 이 펜션이 어떻게 인·허가 과정을 거칠 수 있었는지, 정기 위생 점검과 소방 점검 과정에서 불법 건축물이나 소방 설비 등에 대한 제재가 왜 없었는지가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또 공무원들의 불법 묵인과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한 점의 의혹도 남아서는 안 된다.


어느새 12월, 돌이켜보면 올해 광주와 전남은 전에 없을 만큼 다사다난했다. 설 명절 여수 바다 기름유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 앞에서 코를 막고 웃었던 장관은 옷을 벗었고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5억 황제 노역’ 판결을 내린 광주지법원장도 불명예 퇴직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장성 요양병원 화재, 세월호 지원 소방헬기 추락 사고가 잇따라 터졌다. 해외 도피 설까지 나돌았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경찰과 검찰을 기만하듯 전남 순천에서 심하게 부패한 변사체로 발견됐다.
홍도에서는 자칫 제2의 세월호가 될 뻔했던 여객선 좌초 사고가 있었고 서해 해상에서는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 단속 과정에서 총성이 울리며 중국인 선장이 숨지기도 했다.


담양 펜션 화재까지, 모두 기본과 비극이 남긴 교훈을 지키지 않고 잊은 결과였다. 희생자와 유가족, 우리를 위해서 더 이상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위해 기본에 충실하게 펜의 날을 세워야 한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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