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는 사주의 자유가 아니다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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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상욱 CBS 대기자  
 
“펜으로 싸우는 자, 칼로 죽는다.”
이 말은 알제리의 회교원리주의 지도자 ‘아부압둘 라만 아민’이 남긴 말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사회통제와 국가 통치에 따르지 않고 ‘펜이 칼보다 강하다’며 저항하다가는 처형될 줄 알라는 경고였다.

언론의 비판정신과 자유를 짓밟은 적(敵)은 대개 국가권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위해 필요한 토대는 기자 개인이 권력에 저항하기 이전에 언론사의 조직과 경영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가능했다. 그래야 기자를 권력의 위협과 핍박으로부터 최소한이나마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권력은 한 발 물러서고 그 대행자로 사주와 경영진이 나서 언론과 기자를 핍박한다.

“자유가 자유를 몰수하는 자유주의의 변증법.”
우리의 언론 상황을 두고 한 언론학 교수가 탄식한 말이다. 언론사주나 경영진이 권력에 밀착해 긴밀한 관계를 맺고 권력 창출과 기득권 유지에 나서면 언론의 자유, 기자의 자유는 사주에게 귀찮은 걸림돌이다. 언론기업이 정치적으로 힘이 커지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활동할수록 기자는 위축되고 광고영업으로 내몰리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1960년대 독일에서 ‘언론 자유’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시민과 대학생들은 “서독의 언론자유는 200명 언론사주들의 독점적 자유로 전락했다. 국민의 다양한 보편적인 언론 자유를 몰수당했다”고 외치며 진정한 저널리즘의 회복을 촉구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담보해 내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 언론사 내부의 자유도 확보되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진일보한 것이다. 50년 전의 일이다.

이런 인식의 전환 시대에 서구의 언론사주들은 그래도 꽤나 진지한 고민을 한 모양이다. 누스 버거의 ‘정신과 돈 사이에 낀 언론’이란 책에는 “언론사를 경영한다는 것은 정신을 위해 물질을 고려해야 하는 입장에서 두 모순되는 꼭짓점을 딛고 그것을 조화시켜야 하는 가장 유별난 직업”이라 적고 있다. 돈이 넉넉하면 정부 눈치, 기업 눈치 안 보고 좋은 언론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는, 경영과 저널리즘 사이에 낀 지식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정말 이 정도면 양반이다. 오늘날 한국 언론계에선 주요 방송통신사 사장은 모두 집권세력의 낙하산이다. 신문사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세습된다. 사장에게 두 번 해고당한 방송기자도 있다. MBC 노조 집행부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 기각 보름 만에 재신청되는 등 검찰과 경찰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괴롭힌다. 해고자가 줄을 잇고 대량징계에 쓰일 대기자 명단이 등장했다. 극적 타결에 이르렀지만 국민일보 노조는 지도부가 무기한 철야단식을 벌였고, 사주는 노조원 20명을 고소고발한 채 자연인 자격으로 한 것이니 노사협의에서 빼라며 버티기도 했다.

과거 유럽 언론사 경영인이 겪었다는 저널리즘 철학과 현실 사이 촘촘한 경계에서의 고민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이 나라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의 자유이자 언론사주의 자유로 변질돼 버렸다. 언론의 목표도 그들의 경제적·사적 이윤추구로 왜곡돼 버렸다. 당연히 정치권은 저널리즘의 붕괴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미칠 정치적 이해타산만을 따질 뿐 저널리즘의 복원에는 관심이 없다. 남은 건 저널리스트와 시민뿐이다.

언론사가 기업이고 언론의 적이 언론사주라면 남은 이들의 남은 방법은 뭘까? 대자본, 편파적 공권력의 카르텔 앞에서 사상자가 속출하는 구호와 파업이 아닌 새로운 투쟁, 새로운 깃발이 절실하다. 변상욱 CBS 대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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