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판 언론은 광고로 손 본다?

"부정적 보도로 광고효과 없다" 논리… 비판 보도 원천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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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이 삼성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쓴 기사를 전부 스크랩해서 다른 신문이 보도한 것과 비교해보고 이것을 한겨레 쪽에 보여주고 설명해 줄 것. 이런 것을 근거로 광고도 조정하는 것을 검토해 볼 것” (2003년 10월18일 도쿄, 이건희 회장의 내부지시 문건)

삼성그룹이 4년 전 이건희 회장의 ‘광고 조정’ 발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판적 언론인 한겨레에 광고를 전면 중단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광고 옥죄기를 하고 있다.

본보 조사 결과 한겨레는 지난해 10월27일 김용철 변호사의 1차 기자회견 보도 후 60여일간 삼성 광고를 수주하지 못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조선 동아 중앙 매경 한경 등 상대적으로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해 침묵하거나 우호적으로 보도한 신문은 같은 기간 30~40여건의 광고를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광고 조정’과 ‘광고 중단’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실제 삼성 홍보실 관계자는 “광고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은 전혀 아니고 광고 조정이라는 것도 없는 걸로 안다”며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는데 광고를 실어봐야 효과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삼성 광고 담당자도 “광고를 중단한 적은 없다”며 “언제 비판 보도가 있을지 몰라 광고가 나갈 포인트를 못 잡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삼성은 이렇게 ‘광고 효과’라는 교묘한 마케팅 논리를 들어 광고 배정을 꺼리고 있다. “비판적 기사 때문에 광고를 중단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삼성은 “광고 효과가 없기 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경우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의혹 폭로때 비판적인 보도를 했지만 당시 광고 수주가 전혀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언론을 겨냥한 ‘신종 광고탄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악의적인 보도가 아닌 비판 보도에 대해 삼성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겨레 김종구 편집국장은 지난해 12월31일 칼럼 ‘<한겨레>, 스무살 전야’에서 “삼성 광고는 지면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자본이 자기 돈 자기 마음대로 쓴다는 데야 뭐라 말하겠느냐. 다만 건전한 비판마저도 불온시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그 옹졸함과 편협함이 씁쓸할 뿐이다. 하지만 한겨레는 결코 흔들림 없이 계속 이 길을 걸을 것”이라고 썼다.

더 큰 문제는 한 언론이 비판 기사로 ‘광고 조정’을 당하는 상황에서 대다수 언론이 ‘삼성을 비판할 수 있겠느냐’이다. 비판적 언론보도가 막대한 광고 공세로 원천적으로 봉쇄당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겨레가 삼성 비자금 의혹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조선 동아 중앙 한경 매경은 물론 한국 문화 서울 등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나아가 동아는 1월7일자 ‘영국여왕도 삼성TV 본다’라는 기사에서 “지난해 12월 25일 TV를 통해 영국 전역에 방송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크리스마스 메시지 화면에 삼성전자의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TV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며 “이 화면에서 여왕의 왼편 창 앞에 놓인 삼성전자의 TV가 카메라에 잡혔다”고 보도했다. 영국여왕이 삼성TV를 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판매에 도움이 될 거란 취지의 기사였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자본권력이 광고 등을 동원해 언론을 좌지우지한 부끄러운 역사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며 “이번 사건은 우리 언론의 슬픈 자화상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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