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관련 기사 과민 반응…수시로 “이번만 빼자”
근무중인 것 알면서도 “연락 안돼 동의 못구했다”
|
 |
|
|
|
▲ 시사저널 이윤삼 전 편집국장 |
|
|
지난해 6월 삼성 관련 기사 삭제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가 끝없는 노사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노조의 파업과 기다렸다는 듯이 취해진 사측의 직장폐쇄로 해결의 접점은 보이지 않는다. 사태가 발생한 지 8개월 째 접어드는 시점에 당시 편집국을 이끌던 이윤삼 전 국장이 PD수첩을 통해 당시 시사저널 편집국에 일어났던 사건 전말을 밝혔다. 기사 삭제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지자마자 수리된 후 지금까지 모든 인터뷰에 응하지 않던 이 전 국장을 12일 만났다.
-그 동안 많은 언론의 인터뷰를 뿌리쳐왔다. 7개월이 지난 지금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그동안 시사저널 노조에서 기사가 빠진 경위에 대해 잘 설명해왔기 때문에 인터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이 계속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금 사장은 부인하지만 사태의 핵심은 금 사장이 이학수 부회장 관련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개인적 친분, 경영상의 어려움을 들어 빼자고 한 점이다. 기사를 읽어본 것은 금요일 저녁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금 사장이 기사에 문제가 있고 소송이 예상돼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서 뺄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은 기사를 뺀 뒤에 만들어낸 변명에 불과하다. 이미 담당기자, 경제팀장, 취재총괄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기사였던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말해 달라. 지난해 6월14일(목) 오후 2시30분께 삼성그룹 홍보실 임원으로부터 기사를 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때는 내가 아직 기사를 읽기 전이라 “기사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삼성 측으로부터 전화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3∼4시께 금 사장으로부터 6층 사장실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금 사장은 이학수 부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내세워 기사를 빼자고 요청했다. 금 사장은 ‘지난 번 삼성 통권 특집 할 때도 내가 부탁하지 않았느냐, 이번 기사만 빼 주면 앞으로 삼성에 대한 어떠한 기사도 빼자고 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 국장이 원하는 편집국 요구 조건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는 요지로 말했다. 나는 “기사를 본 뒤에 판단하겠다”고 말하고 내려왔다. 당시 금 사장을 만난 것은 약 5분 가량으로 금 사장이 나중에 주장하고 있듯이 명예훼손, 기사의 부정확성을 들어 매우 장황하게 설명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기사를 내보내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는가. 금 사장과의 면담 후 5층 편집국으로 내려온 나는, 곧바로 기사를 읽어보았다. “이학수 부회장 권력, 너무 비대해졌다”는 제목으로 삼성그룹의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전 전략기획실장)이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삼성 내부에서 흘러나온다는 기사였다.
곧바로 경제팀장과 취재총괄팀장을 회의실로 불러 회의를 했다. 경제팀장은 다른 매체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부분이 있으므로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취재총괄팀장은 충분히 내보낼 수 있는 기사라고 주장했다. 나는 기사 요건을 갖춘 기사라고 판단하고 기사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명예훼손 부분도 검토했다. 나는 오랫동안의 데스크 경험으로 이 기사가 명예훼손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잘 판단할 수 있었다.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면 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이번에는 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정도로 문제없는 기사였다.
시사저널에서 삭제된 기사와 매우 비슷한 기사가 이후 ‘월간조선’에 실렸으나, 이 매체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지 않았다. ‘월간조선’ 편집장도 삼성그룹으로부터 기사를 빼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고, 기사는 예정대로 보도됐다.
-이후에도 금 사장이 기사를 뺄 것을 요구했나? 나는 매주 금요일 오전 9시30분에 금 사장에게 ‘금주의 커버스토리’에 대해 간략히 보고한다. 이날도 금 사장에게 올라가 커버스토리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보고하고, 삼성 이학수 부회장 관련 기사는 “기사 요건을 잘 갖추었으므로 기사를 내겠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금 사장은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국장이 내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며 화를 냈다. 면담은 짧게 끝났고, 곧 편집국으로 내려왔다. 이 때 나는 금 사장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으므로, 기사를 내보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금 사장이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끼칠 정도로 기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편집국장인 나를 내려 보내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설득했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기사가 인쇄소에서 빠질 때까지 금창태 사장으로부터 어떤 지시도 받지 못했다.
오후에 삼성그룹 또 다른 고위직 임원으로부터도 기사를 빼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회사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날 다른 기사 문제로 기사를 빼달라는 요구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금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삼성 비판 기사가 삭제된 사례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가. 금 사장은 평소에 삼성그룹 관련 기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2005년 한가위때 ‘삼성은 어떻게 한국을 움직이나’라는 제목의 특집기획 기사를 72페이지에 걸쳐 만든 적이 있다. 이때도 친분관계를 내세워 이학수 부회장에 대한 기사는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편집국 기자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삼성 관련 기사에는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도 금 사장은 “이번 기사만 빼 주면 앞으로 삼성에 대한 어떠한 기사도 빼자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이 정녕 빼자고 한 적이 없으면 “내가 언제 기사 빼자고 한 적 있느냐. 이번 한 번만 빼자”라고 했을 것이다.
-기사 삭제 사실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6월17일 토요일 저녁 5시께 안철흥 기자협회장(현노조위원장 겸임)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금창태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삼성 기사가 삭제되었다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전날 밤 10시께 회사 6층 사무실에서 심상기 회장, 금창태 사장, 박경환 상무, 헌병구 광고팀장 등이 모여 기사 삭제를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금 사장은 국장과 연락이 닿지 않아 동의를 구할 수 없어 기사를 회의 끝에 뺐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금 사장은 금요일 저녁 9시께 내가 5층 편집국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 간부를 내려 보내 기사 연기 의사를 전달했다. 따라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언제든지 나를 6층 사장실로 부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나? 고민에 빠졌었다. 일요일 저녁 고심 끝에 나는 항의성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편집국장에게 알리지도 않고 기사를 삭제했을 뿐만 아니라, 기사를 뺀 뒤 편집국장에게는 통보하지도 않고 기자협회장에게 양해를 구하는 금 사장의 태도에 경악했다.
6월19일(월) 기자 전원을 불러 왜 편집국장이 사표를 쓰는지에 대해 정확히 설명했다. 사표 내용은 “시사저널 편집국장으로서 업무를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해 항의의 표시로 사직서를 제출합니다”였다. 다음날 곧바로 사표가 수리됐다.
이대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