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는 퍼즐 맞추기가 아니다
발달장애자녀가 특수교사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 부모는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후 부모가 증거 수집을 위해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서 수업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법정에선 2시간 40분에 달하는 녹음파일이 전체 재생됐다. 수업시간을 녹음했다던 파일 대부분은 무음이었고, 기소된 사건 관련한 내용은 전체 다 합해 5분 남짓했다.한 장애부모는 장시간 무음에 대해 지적하며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한 특수교사는 그 시간을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권력의 언론 분할통치와 방심위
자유당 계열 정당의 집권체제에서는 기존 제도를 활용하여 비교적 손쉽게 장악할 수 있는 공영매체와 정치경제적 거래를 통해 포섭할 수 있는 기타 언론을 구분하고, 자원의 불균등한 배분을 통해 성장시킬 우호적 언론과 약화시킬 비우호적 언론을 철저히 갈라 분할통치하는 전략을 세워 일말의 주저도 없이 실천에 옮겼다.한국언론정보학회 소속 5인의 언론학자가 2022년에 출간한 언론 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에 나오는 구절이다(26쪽). 여기서 언급된 집권체제가 활용하는 기존 제도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이
'괴물은 누구게' 놀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저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영화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을 본 한 지인의 첫 마디는 이랬다. 다수의 영화 평론가는 감독과 작가가 이 영화를 3부로 기획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1부와 2부에서 괴물을 찾는 데에 몰두하던 관객들(괴물이 바뀌는 경험을 하기도)이 3부를 통해 자신의 편견(선입견고정관념)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영리한 구성이라는 얘기다. 괴물은 이를 통해 나 또한 여러 관계와 놓인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게 괴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회가 쉽게 내뱉는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전형적인 시각이…
성소수자 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
미디어 재현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점차로 저널리즘의 중요한 규준이 되어가면서, 서구 언론사와 관련 공적 기관들은 성소수자, 장애인, 선주민 등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별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호주언론평의회(Australian Press Council)가 2019년 성소수자를 위한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고 영국의 언론인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Journalists)에서도 2021년 NUJ guidelines on LGBT+ reporting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성
포털 뉴스와 기술 규제
만약 사회적으로 중요성을 가지는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면, 정부와 규제 기관의 주목을 받게 된다. 과거에도 인터넷에는 혐오표현이 있었으나, 이러한 주장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당시 기술은 규모가 작은 산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후 기술 기업이 모든 사람을 연결하며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이후 기술은 규제 대상 산업이 되었다. 하지만 기술 기업을 어떻게 규제할지 문제란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면, 자동차 기업에게 차를 더 안전하게 만들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사고를 없애라고 할 수는 없다.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갔다올게'라는 흔한 말
별은 알고 있다(권오연 감독)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공동체 상영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 다큐는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가 만든 영화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영화 제작진과 유족들은 전국을 돌며 상영회에 참석하고 있다. 청주에서는 오송참사시민대책위가 19일에 공동체 상영회를 열었다. 나는 오송대책위 소속으로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맡아 미리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눌 이야기를 정리했다. 여러 행사를 진행해왔지만 이번에는 참 쉽지 않다.2022년 10월29일,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서 159명이 세상을 떠났다. 가까운 사람에게…
언제까지 받아쓸 것인가?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언론은 서서히 침몰하는 대형 여객선을 지켜보면서도 해경이 불러주는 구조상황만 받아썼다. 국가는 전국에 있는 해난구조전문가를 모두 진도 앞바다에 투입하여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듯했다. 최소한 언론에 보도된 해경 발표는 그랬다. 그러나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8시간 동안 대통령은 TV화면에서 사라졌다. 대통령의 사라진 8시간을 감추기 위해 청와대는 거짓말을 늘어놓았고, 언론은 충실히 받아 썼다.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는 동안, 언
다시 생각하는 '언론의 품격'과 사적 영역 보도
연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언론윤리 차원에서 참으로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최근에는 배우 이선균씨의 육성 보도나 남현희씨나 황의조 선수 사건 등 선정적 보도가 쏟아졌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언론의 품격이라는 것이 떠올랐다.언론과 품격이라는 말이 연결될 수 있을지 의아한 이도 있을 것 같다. 딱 10년 전에 한국 언론의 품격이라는 책을 쓸 때도 그랬다. 운 좋게 훌륭한 분들 틈에 끼어서 언론법제 부분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제목을 놓고 같은 논란이 있었다. 책을 기획한 관훈클럽 집행부는 없는 품격이라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연구·활동하는 기자들을 위해 필요한 것
제가 올해 40편 넘게, 칼럼을 작정하고 썼습니다. 타깃 독자는 분명했어요. 바로 기자들입니다. 의료개혁이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언론의 이해도가 낮아서라고 생각했거든요.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언론의 이해도가 높아져야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지고, 사안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쓴 보람이 있었는지, 최근엔 기자들에게 받는 질문의 수준이 달라졌습니다.의대 정원 증원을 주장하다 의사협회로부터 징계심의에 회부된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와 지난 14일 나눈 대화 일부다. 아마도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려
중증장애인 400명 대량 해고, 오세훈의 '약자와의 동행'
중증발달장애인 희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동자다. 이 사업은 2020년 7월, 서울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탈시설한 최중증장애인, 노동 경험이 없는 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다. 이들은 세 가지 직무(권익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를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는 일을 해왔다.한평생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다가 마흔 살에야 탈시설한 희자는 한글을 더듬더듬 읽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의 장애는 이 일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증발달장애인